"왜 이런 미친 짓을 했는지 모르겠어.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다니까…. 허허."
경기 용인 신봉동에 사는 원로 산악인 손경석(84)씨는 서재와 침실, 거실 한쪽 벽면까지 가득 채운 책을 바라보면서 읊조리듯 조용히 말했다. 책장에는 고물상, 일본 국회도서관 등을 뒤져 60여년간 모아온 2,000권에 달하는 산악 관련 책과 자료가 빼곡히 꽂혀 있었다.
한국산악사의 실질적 뿌리로 1937년 결성된 백령회 사무일지, 일제강점기 때 한국 산악기록이 담긴 일본 산악회보 복사본, 등산ㆍ조난 관련 신문기사 스크랩, 그리고 이 모든 자료를 차곡차곡 정리한 인덱스 카드 1,200장…. 그리고 그는 두툼한 책 한 권을 꺼냈다.
책장을 넘기면서 그는 "이게 내 인생의 결실이야"라고 말했다. 표지에는 라는 글귀가 선명했다.
손경석씨가 한국 산악사를 집대성한 (이마운틴)를 최근 출간했다. 기원전 18년 고구려 동명왕의 두 왕자 온조와 비류가 북한산을 올랐다는 의 기록부터 지난해까지 한국 산악인 활동과 조난사 등을 총 정리했다. 그 동안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무려 20년간 집필한 집념의 결과다.
그는 "산악인생 50년을 정리하려고 1995년쯤 출간하려다가 당시 8,000m이상 히말라야 정복 등 한국산악인들의 역동적인 기록이 나오길래 기다리다가 늦었다"고 말했다. 그는 "산은 내 인생의 선장(船長)이었어. 전공(서울대 정치학과 졸업)을 따라 갔다면 이런 바보스런 등산사는 안 나왔을 거야"라며 웃었다.
그는 1943년 백령회의 대표적인 산악인 주형열씨를 만나 암벽 등반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산을 탔다. "해방 즈음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4형제 중 장남인 내가 가족을 책임졌어. 등산을 하는 동안엔 정상에 오른다는 생각에 온갖 잡념이 싹 사라지고 중책에서 벗어나는 희열을 느꼈지."
해방 후 조직된 학생산악연맹에 가입하고선 매주 주말마다 산에 개근했다. 4대 독자인 그는 위험한 취미생활을 걱정하는 어머니에게 양복을 입은 채 "출장 다녀오겠습니다"고 나가서는 산에서 등산복으로 갈아입기도 했다고 말했다.
"수천 번 산에 올랐지만 54년 설악산 천불동 계곡이 가장 기억에 남아. 6ㆍ25때 전사한 이들의 사체가 있을 정도로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울창했지. 아름다웠던 계곡이 아직도 아릿아릿해."
가정에 소홀해 집에선 빵점 짜리 남편이었고, 후유증은 지금도 남아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미안한 마음에 아내에게 "이 책을 당신한테 바친다"며 건넸더니 "집안일은 생각하지도 않고 자기 좋은 대로 전 세계 누빈 사람이 만든 책이 뭐가 좋겠냐"며 외면하더라는 거다.
그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전에 법주사, 해인사 등 산사에 가고 싶어했는데 혼자 산에 다니다 그 뜻을 이뤄드리지 못해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손씨는 최근 오은선씨의 칸첸중가 등정 의혹에 대해서는 "칸첸중가 등반 경험이 있는 사람과 원로 산악인 등이 참여하는 일종의 청문회를 열어 진위를 가리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근래의 알피니즘은 개척이 아니라 초등(初登)기록 등 반대 급부만을 위한 것으로 변질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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