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과세상/ '조선을 사로잡은 꾼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과세상/ '조선을 사로잡은 꾼들'

입력
2010.09.10 12:07
0 0

안대회 지음

한겨레출판 발행ㆍ340쪽ㆍ1만4,000원

역사가들이 주목해온 역사적인 인물들은 대부분 정치가나 학자, 문인이다. 국가를 경영하고 사상과 학문을 발전시킨 이런 인물들과 관련해서는 공식자료가 많이 남아있고 연구자들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대개 그 사회의 지배계층인 이런 인물들을 통해서 한 시대의 역사상을 파악할 수는 있겠지만, 그 시대의 생생한 밑바닥을 꿰뚫기에는 무언가 부족함이 있다.

안대회(49)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는 지배계급은 아니었지만 각각의 영역에서 일가를 이뤘던 조선 후기의 인물들을 발굴, 소개함으로써 당대의 구체적 삶을 복원하는 일에 진력하고 있는 학자다.

19세기 전반 평양 기생들의 애환을 기록한 개성의 낙방거사 한재락의 소품집 ‘녹파잡기’를 발굴해 소개하기도 했고, 여행가 원예가 춤꾼 등 숨겨진 조선 후기 고수들의 개성 넘치는 삶을 재조명한 (2008) 등 다양한 인문교양서로 대중의 호평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은 비록 비주류였지만 자신의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다채로운 인간 군상에 천착해 온 저자가 낳은 또 한 권의 노작이다. 가수, 재담꾼, 광대, 사회사업가, 노비 출신 시인, 강도, 점쟁이 등 책에서 소개되는 인물들은 워낙 다양해 그 공통점을 하나로 묶기는 쉽지 않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비록 존경의 대상이 될 만한 인물들은 아니지만 독특한 삶의 방식으로 당대인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막 발달하기 시작한 조선 후기의 도시문화를 풍성하게 살찌우는 데 기여한 이들이라는 점이다.

늘 그렇듯 기록은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안 교수는 역관 출신의 문인 조수삼(1762~1849)이 남긴 ‘추재기이(秋齋紀異)’의 기록을 실마리로 그간 연구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던 다른 문헌들을 섭렵해 조각조각난 이들의 삶을 솜씨있게 복원한다.

그들은 어떤 이들인가. 정학수는 정조 때 지금의 혜화동 일대에서 초대형 서당을 세우고 강학한 교육자다. 벼슬을 하지 못한 일개 서당 훈장이었지만 조수삼은 그를 “문하에서 학업을 성취한 자가 많아 반촌 사람들이 그를 정 선생이라고 칭송했다”고 기록했다. 학문과 문장이 높아 사대부들은 물론 국왕인 정조까지도 그의 존재를 알 정도였다. 놀라운 것은 그가 노비 출신이었다는 점. 신분제도가 흔들리기 시작한 시기였지만 그래도 철저한 양반사회였던 조선에서 노비 출신 대(大)교육자의 출현은 이전까지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다. 공교롭게도 그가 서당을 연 곳은 대학자 송시열이 살던 곳이라 ‘송동(宋洞)’이라 불렸는데, 정학수와 절친했고 절창으로 유명했던 신광하라는 시인은 “이제부터 송동일랑 ‘정곡(鄭谷)’이라 불러야지”라고 정학수를 칭송하는 시를 썼다가 성균관에서 쫓겨나는 필화사건을 겪기도 했다.

이름은 남아있지 않지만 ‘벙어리 방한(幇閒) 최씨’라 불린 인물도 특이하다. ‘방한’은 기생과 부유층 남성들과의 만남에 다리를 놓아주는 인물인데, 요즘 식으로 말하면 고급 뚜쟁이인 셈이다. 최씨는 한양 전체의 관기와 사창을 관리하던 그 바닥의 우두머리였다. ‘벙어리 방한’이라는 별칭에도 불구하고 최씨는 벙어리이기는 커녕 용모가 준수하고 언변이 뛰어난 인물이었을 것이라는 안 교수의 주장도 흥미롭다. 벙어리라는 것은 고객과 기생 사이의 관계에 대해 절대 비밀을 유지했기 때문에 얻은 별칭이었을 것이라고 안 교수는 추론한다. 전문적 뚜쟁이로 부유층 고객을 거느리고 있었던 최씨는 씀씀이가 세도가들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 밖에도 거지두목 출신이지만 온갖 연희에 능해 나타나기만 하면 장안을 들썩이게 했다는 광대 달문, 미신을 불온시하는 유가사회에서도 신복(神卜)으로 칭송받았던 봉산 출신의 맹인 점쟁이 유운태 등 당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인간군상의 모습이 책에서 생기있게 되살아난다.

안 교수는 “이들은 특별한 기예를 지녔으나 지배계층의 공식문서보다는 저잣거리 보통사람들의 구전의 힘에 의해 기록으로 남은 인물들”이라며 “이들을 통해 조선 후기 서민들 틈에서 성장한 대중예술이 문화와 예술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고 서민문화의 한 축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직접 제보하실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리며, 진실한 취재로 보답하겠습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