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세상을 들이켜다' 야콥 블루메 지음ㆍ김희상 옮김
따비 발행ㆍ384쪽ㆍ1만8,000원
'인생, 이 맛이다' 고나무 지음
해냄출판사 발행ㆍ237쪽ㆍ1만2,800원
맥주 좋아하시는지. 더운 여름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이면 살 맛 난다는 맥주당이 아니더라도, 이 두 권의 책은 시원하게 쭉 마시고 싶어지는 맛을 지녔다. 일단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필치가 맛있다. 맥주 이야기를 한 두름에 꿰어 오지랖 넓게 펼쳐 놓은 솜씨가 시원스럽다.
는 맥주의 탄생부터 오늘까지 이 황금빛 술이 일으킨 소동과 추억과 투쟁과 환락을 돌아본다. 맥주의 문화사다. 맥주를 만든 사람들과 맥주를 마신 사람들, 맥주와 정치 등 맥주 이야기가 맥주 거품처럼 부드럽고 풍성하게 흘러 넘친다.
맥주를 폭음하는 능력으로 신성을 과시한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맥주 빚어 파는 게 큰 돈줄이었던 중세 수도원에서 금식 기간에 ‘마시는 빵’ 맥주로 배를 불리던 수도사들의 얼근히 취한 얼굴, 출산 축하 잔치로 온동네 여자들이 거나하게 맥주를 걸치고 거리를 활보하던 스칸디나비아 시골 풍경, 노조의 투쟁과 정당의 전당대회 등 정치 투쟁에 애용된 20세기 초반 독일의 맥줏집 등이 선연히 떠오른다.
저자는 맥주를 ‘공동체의 술’이자 ‘연대의 술’이라고 강조하고, “맥주는 사회와 정치를 떠받드는 강력한 요소”라고 주장한다. 너나 없이 왁자지껄 한데 어울려서 마시는 맥주에 정치 토론과 연대 의식, 혁명의 불꽃이 스며든 역사적 사례를 많이 소개하고 있다. 이를테면 여성 사회주의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가 반전 연설을 한 곳도, 나치스가 창당대회를 열고 히틀러가 최초의 정치 연설을 한 곳도 뮌헨의 맥줏집이었다.
산업화 이후 맥주의 후퇴를 다룬 장은 특히 인상적이다. 노동 강도가 세지고 노동 통제가 심해지자 노동자들은 쉽게 취하지 않는 맥주 대신 빨리 취하는 독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맨 정신에 불평을 터뜨리지 못하도록 독주를 권했다. 덕분에 17세기 노동자의 술은 브랜디가 평정했다. 이후 일터에서 해롱거리는 노동자가 많아지자 독주를 규탄하는 쪽으로 돌아서긴 했지만. 다분히 정치적인, 독주와 맥주의 엇갈린 운명은 한국에서 막걸리와 소주의 신세와도 닮은 점이 있다. 서민의 술 하면 막걸리로 통하다가 소주로 넘어간 것은 막걸리를 즐겼다는 대통령이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한 1970년대 이후다. 요즘은 다시 막걸리가 인기라지만.
는 맥주광의 맥주 예찬론이다. 재미삼아 맥주 만들기를 해봤다가 ‘맥주당’이 됐다는 현직 기자인 저자는 한 달 휴가를 쓰게 되자 아예 양조장에서 일하면서 맥주에 빠져 살았다. 맥주가 인생을, 인간 관계를 행복하게 발효시킨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맥주를 직접 만들면서 겪은 좌충우돌 에피소드 외에 머리와 가슴으로, 혀로 배우고 익힌 맥주 상식도 짭잘하게 넣었다.
세계의 맥주는 수백 종이 넘는데, 한국 맥주 맛은 왜 다양하지 않은가 불만이던 그가 어느 날 맥줏집에서 만난 국세청 직원들 앞에서 외친 구호는 가관이다. “권리 없이 세금 없다. 내가 낸 주세, 돌려달라.” 맥주 생산에 규제가 많은 ‘맥주 계엄령’을 성토한 열변에 웃음이 난다. 유쾌한 책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