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원이 얼마전 국내 여자기사 랭킹 1위 루이나이웨이를 궁륭산병성배 세계대회에 출전할 한국대표 선발에서 제외한 데 이어 이번에는 지난 10여년간 유지해 온 루이의 ‘한국기원 소속기사’ 자격을 박탈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한중 바둑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국기원은 국내에서 활동 중인 외국인기사들의 의무와 권리를 명시한 ‘객원기사 규정’을 새로 마련해 다음달 상임이사회 의결을 거쳐 시행할 방침이다. 새 규정에 따르면 객원기사는 기사총회 투표권이 없으며 국내기사에게 매달 지급되는 복지수당과 퇴직금을 받을 수 없고, 랭킹이 아무리 높아도 외국에서 개최되는 세계대회에 한국대표로 우선 선발될 수 없는 등 상당한 권리의 제한을 받게 된다. 한국기원은 그동안 객원기사에 대한 명문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 새로 정비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한국기원에 적을 두고 있는 외국인기사는 중국 국적의 장주주 루이나이웨이 부부와 권효진 5단의 남편 위에량, 러시아인 샤샤와 스베타, 미국인 제니스 킴, 헝가리인 디아나 코세기 등이다. 이들은 거의 다 지금도 이미 객원기사 신분인데다 일부는 아예 한국에서 기사생활을 하고 있지 않아서 새 규정을 적용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루이 부부는 다르다. 현재 한국기원 소속기사 신분이어서 새 규정에 따라 객원기사로 ‘강등’될 경우 상당한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지난 10년간 국내기사들과 ‘한솥밥을 나눠 먹는 식구’에서 하루 아침에 ‘지나가는 과객’ 쯤으로 대접이 달라지게 되는 셈이다. 루이 부부도 1999년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객원기사였으나 한국 바둑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 받아 2001년5월부터 한국기원 소속기사로 승격돼 지금까지 기사총회 참가와 투표권 행사는 물론 연구수당 수령 및 국내외 대회 출전 등에서 국내기사들과 똑같은 권리와 의무를 다해 왔다.
그런데 이같은 한국기원의 객원기사 규정 제정 작업이 공교롭게도 루이가 아시안게임에 중국대표로 출전키로 확정된 다음부터 서둘러 추진되고 있어 앞서 궁륭산병성배 한국대표 선발 때와 마찬가지로 이것 역시 루이를 겨냥한 의도적인 보복 조치가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실제로 국내 바둑계 일부에선 지난 10년간 한국 바둑계서 많은 은혜를 입었던 루이가 아시안게임 중국 대표로 출전하는 건 배은망덕한 처사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여자바둑 세계 최강자이자 한국 바둑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루이로 인해 한국의 금메달 획득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을까 크게 우려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루이에게 직접적인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중국 국적인 루이가 아시안게임 중국 대표로 출전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새 규정을 소급 적용해서 루이가 지난 10년간 아무 하자 없이 유지해 온 한국기원 소속기사 자격을 하루 아침에 박탈하는 건 법리적으로 옳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프로기사들 사이에서도 이에 대해 찬반이 엇갈리고 있어 오는 13일 열릴 기사총회서 어떤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질 지 관심을 모은다.
한편 루이나이웨이는 “아직 구체적인 내용을 몰라 뭐라 말할 입장이 아니다”라며 “지난 10여년간 한국에서 좋아하는 바둑을 마음껏 둘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그동안 한 식구처럼 따뜻하게 대해 준 동료기사와 바둑팬들에게 그저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박영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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