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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민나 도로보데스!(전부 도둑놈들이야!)

입력
2010.09.10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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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을 대규모 학살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장 루돌프 헤스는 처형 당하는 순간까지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반성하지 않았다. 그가 감옥에서 남긴 수기 을 관통하는 인식은 “고통스러웠지만 명령이었고, 직무였으므로 수행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헤스는 자기 직무에 충실했던 지식인이자 교양인이었지만 도덕성이 결여된 인물이었다. 그의 삶의 궤적은 공직자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정치성향도 업무능력도 아닌 도덕성이라는 것을 일깨우는 사례로 남아 있다.

내 사람 심기가 부른 파국

인사청문회와 딸 특채 파문으로 고위공직자들이 잇달아 낙마한 원인은 도덕적 결함이었다.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병역 기피, 논문 표절 등 메뉴도 다양하고 화려했다. 서민들 보기에는 그물코가 듬성듬성한데도 워낙 살이 찌다 보니 헐렁한 망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여태껏 걸러지지 않은 채 자리를 옮겨가며 승승장구해왔다는 데 있다. 그런 동안 우리 사회의 자정 및 검증기능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걸러지기는커녕 현 정권 들어서 이런 부도덕한 인물들이 더욱 득세했다.

정권 초기부터 ‘고소영 내각’ ‘강부자 내각’이라는 용어에서 보듯 기득권 세력들만 살판나는 세상이 만들어졌다. 대통령과 얼마나 지근거리에 있느냐가 발탁 기준이 되다 보니 도덕성은 애초부터 안중에도 없었다. 여론이 시끄러워지자 이명박 대통령은 “능력만 있으면 되지 돈 많은 게 뭐가 문제냐”고 했다.

따지고 보면 이번 청문회 사태도 그의 인식이 달라지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 여전히 도덕성보다는 정권 후반기를 지탱해가기 위해 내 사람 심기에만 몰두한 결과였다. 청문회 과정에서 일부 인사의 위장전입이 문제가 되자 “사전에 알았지만 별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청와대의 설명은 현 정권의 태생적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온갖 도덕적 결함을 안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 사람을 쓴 당사자인 대통령이 막상 문제가 생기자 있어서는 안된 일이라고 개탄한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런 과정을 알기에 집권 후반기 국정 기본 방향으로 내세운 ‘공정사회 구현’이란 말에 얼마나 진정성이 담겨 있는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공정사회를 강조하다 보면 결국 타격을 입는 쪽은 진보보다는 보수세력일 가능성이 큰데 보수를 기반으로 한 현 정권이 제 살을 깎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벌써부터 여권 내부에서조차 부메랑이 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지 않은가.

공정사회에 대한 개념도 구체적으로 정립되지 않은 듯하다. 적어도 국정 이념이라면 정확한 개념과 논리적 근거, 장ㆍ단기 실천방안이 함께 제시되는 게 옳다. 어느 날 선진사회와 법과 원칙을 외치다가, 갑자기 이제부턴 공정사회다 하고 목청을 높이니 어리둥절하다. 사람들이 이해하기로는 전자는 기득권층을 보호하려는 수단 내지 방편인 반면 후자는 약자와 소외계층을 배려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용어로 궤도가 전혀 다르다. 대통령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 건지, 가치관이 변했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정부 내에서도 해석을 놓고 우왕좌왕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공정사회 정치구호 아니길

‘친서민’이란 말만 해도 그렇다. 구호만 그럴 듯했지 구체적인 대책과 실천방안은 나올 듯 말 듯하다가 가물가물해졌다. 그러고는 곧바로 공정사회가 불쑥 튀어나온 것이다. 이쯤 되면 항간에서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즉흥적인 전략이라고 폄하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여론은 권력층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결코 꼼수를 부리거나 적당한 사탕발림으로 넘어가려 해서는 안 된다. 5공화국 초기 한 TV드라마가 만들어낸 유행어가 떠오른다. 친일파이자 땅부자였던 주인공은 말끝마다 이렇게 내뱉었다. ‘민나 도로보데스!(전부 도둑놈들이야)’. 지금 서민들의 심정이 꼭 이럴 것이다.

이충재 편집국 부국장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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