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수인 A씨가 세 살 무렵, 어머니는 시끄럽게 운다며 A씨의 입을 손으로 잡아 찢었다. 그래서 A씨에게 어머니는 사랑이 아니라 공포 그 자체였다. 어머니의 포악한 성격과 정신이상은 A씨가 성인이 되면서 더욱 심해졌다.
어머니는 남편과 장남이 사망했음에도 이를 믿지 않았다. 도리어 이 모든 것이 재산을 빼돌리기 위한 조작이라며 자녀를 상대로 수많은 고소를 했으나 단 한번도 인정받지 못했다. 하다 못해 어머니는 둘째인 A씨가 허위로 남편의 사망신고를 했다며 A씨의 집으로 쳐들어와 전기드릴로 문을 부수고 난입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이후 수 차례 A씨의 집과 사무실로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가 하면, 아무런 근거 없이 A씨가 다른 남자와 내연의 관계라고 주변사람들에게 떠들고 다녔다. 남편이 1970년대 사 둔 건물의 매매계약서를 A씨가 돌려주지 않는다며 형사고소를 했으나 결국 무혐의 종결되기도 했다.
A씨는 어머니와 20년간 떨어져 사는 것에 만족하며 횡포를 견뎠지만 이내 한계에 부닥쳤다. 2006년 어느 날 어머니가 또 A씨가 다니는 학교 연구실로 찾아왔고 A씨는 나가달라고 했다. 결국 실랑이가 몸싸움으로 번졌지만 서로 큰 상해는 입지 않고 끝났다.
그러나 며칠 뒤 어머니는 A씨가 본인의 갈비뼈 부위를 짓밟는 등 전치 12주의 존속상해를 가했다며 허위의 사실을 근거로 고소했다. 결국 무죄판결을 확정 받은 A씨는 어머니를 무고 및 모해위증 혐의로 고소했다. 정말로 처벌을 원한다기보다 강제로라도 정신감정이나 치료감호 등 적절한 조치를 받게 할 수 있겠다 싶어서였다.
그러나 담당검사는 A씨의 고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기의 직계존속(부모, 조부모 등)에 대한 고소를 금지한 형사소송법 224조 때문이었다. 이 법 조항은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고소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A씨는 결국 이 법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고, 기각되자 2008년 직접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A씨가 제기한 '직계존속 고소금지 위헌 소원'에 대한 공개변론이 9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렸다. 변론에선 양측의 대리인이 출석해 자식이 부모를, 며느리가 시부모를 고소하지 못하도록 한 법 규정이 '효(孝)'라는 보편적 가치를 반영한 합헌적 조항인지, 법의 보호를 받는 기본권을 제한하는 위헌적 조항인지를 두고 격론이 벌어졌다.
A씨측 대리인인 정보건 변호사는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에 대해서 고소권을 박탈한 것은 다른 범죄피해자에 비해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것"이라며 "가령 부모가 자식을 살인하려고 하다가 미수에 그쳤더라도 자식은 법의 보호를 받기는커녕 부모를 피해 숨어 다녀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해당 조항은 오늘날 구시대적 유물이 된 봉건적 가부장제에서 비롯한 것"이라며 "이 법 조항의 목적은 단지 직계존속의 권위 유지와 효도를 강요하고자 하는 것에 불과해 어떤 존재근거도 찾기 어려우므로 평등원칙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합헌임을 주장하는 법무부 측은 "효도사상은 우리가 계승ㆍ발전시켜야 할 전통문화이자 가치질서로서 이에 기초한 고소권 제한은 합리적 근거가 있다"면서 "직계존속에 대한 고소가 전면적으로 허용되면 가정문제로 고소가 남발되는 등 가족이 붕괴하고 사회질서가 혼란해질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고소를 각하하더라도 사안이 무거운 경우 검찰이 인지해 수사하도록 하는 대검찰청 지침이 있으며, 가정폭력이나 성폭력은 특별법상 예외조항을 두고 있어 직계존속에 대한 고소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목영준 재판관은 "직계존속의 범죄를 수사기관이 인지해서 수사할 경우 결국 직계비속은 피해자로 검찰에 나와 진술을 해야 하는데, 이럴 경우 고소에 의해 수사하는 경우와 별 차이가 없는 것 아니냐"며 법무부 측에 질문했다.
김희옥 재판관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옛 형사소송법이 본인의 직계존속에 대한 고소를 못하도록 했던 조항을 일본은 1948년 삭제했는데 우리만 여전히 배우자의 직계존속에게까지 못하도록 확대 입법한 배경은 무엇이냐"고 의문을 표시했다. 헌재에 따르면 직계존속에 대한 고소금지규정은 미국 일본 프랑스 독일 뿐 아니라 중국이나 북한의 형사소송법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문준모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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