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산품 등 非민감품목 先협상… 농산물은 단계적 논의를"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논의가 본격화 하고 있다.
한중 양국은 28~29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FTA 협상 본격개시 선언에 앞서 민감분야 처리 방안에 관한 정부간 사전협의 제1차 회의를 개최한다. 내년에 시작될 본 협상에 앞서, 농산물 등 민감한 분야의 처리를 놓고 사전 조율을 하는 자리다.
한국의 수출상품은 4개중 1개 꼴로 중국으로 간다. 해외투자의 절반이 중국에서 이뤄진다. 국내체류 중국인이 50만 명을 넘어섰고 중국거주 한국인은 100만 명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양국 산업을 잇는 유무형의 통로는 한중 경제 모두에 없어서는 안 될 대동맥이다.
중국과의 FTA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항목으로 떠올랐다. 한중 FTA의 필요성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지만 문제는 방법론이다. 과연 어떻게 접근해야 이익을 극대화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느냐가 핵심이다. 한중 경제전문가 4명으로부터 한중 FTA 협상의 방향과 그 방법론을 들어봤다.
■ 박근태 중국한국상회 회장(CJ중국 총재)
"조급함은 금물… 중국적 협상정신 익혀야"
중국에서 20여년 비즈니스를 해온 사람으로서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과 관련, 몇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 중국인들은 어느 민족에도 뒤지지 않는 협상의 천재들이다.
지난 5월 방한한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같은 점을 찾되 다른 점을 남겨두며, 쉬운 내용을 먼저 처리하고 어려운 것은 뒤로 미루자(求同存異, 先易後難)"는 한중FTA 협상 원칙을 제시했다. 이는 중국이 실질적으로 FTA 협상의 타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선언이다.
이는 중국적 협상 정신의 ABC로 거창한 명분 대신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협상을 통해 합의에 이르자는 것이다. 중국 전국시대에 등장한 합종연횡론은 누구와도 손잡을 수 있고 누구라도 공격할 수 있다는 중국특유의 처세술이다. 이런 전통 속에서 성장한 중국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타협할 수 있고, 어떤 주제에서도 협상이 가능한 유연한 사고를 가졌다.
반면 한국인들은 성격이 대체로 급하다. 수많은 서민 생계와 생존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FTA협상 테이블에서 급한 성격은 절대 금물이다. 한국기업들이 중국 파트너와 협상하는 것을 지켜봤지만, 시간에 쫓기며 협상에 임하는 한국인들은 백이면 백 모두 패했다.
반면 한국과 정치ㆍ경제ㆍ사회구조가 다른 중국의 복잡한 요구와 입맛을 연구하며 끈기 있게 협상을 벌인 이들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고 중국 파트너의 신뢰까지도 덤으로 얻었다.
중국과의 협상에서 또 한 가지의 덕목은 겸허함이다. 중국은 체면을 중시하는 나라이다. 겸허함은 비단 미덕일 뿐 아니라 실용적 양보를 얻어낼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 지만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중국팀장
"조기자유화 포함한 기본협정 체결이 돌파구"
한중 FTA는 어렵다. 우선 중국시장을 활짝 열어야 한다. 그러나 농수산업 등 민감산업은 지켜야 한다. 양립시키기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는 협상의 틀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기본협정을 통해 경제 이익을 조기 실현하는 FTA, 그리고 지속적 논의를 통해 성과를 확대하는 FTA를 추구하는 것이 하나의 답이다.
우선 본 협상에 앞서 조기자유화프로그램(EHP)을 포함한 기본협정을 먼저 체결하는 것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최근 중국과 대만의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에서는 양국이 기본협정을 통해 상당 품목을 본 협상 이전인 내년 1월1일부터 개방하기로 합의했다. 먼저 개방하고 본격 협상은 나중에 하자는 것이다.
한중 FTA 기본협정은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소수 품목에 대한 선별적 조기자유화가 아니라 비(非)민감품목 전체를 아우르는'전면적' 조기자유화를 추진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양국이 자국 수입액을 기준으로 일정수준, 가령 70%에 해당하는 품목의 수입관세를 철폐하기로 각자 선언하는 방식이다. 기준만 합의되면 협상도 필요 없다. 농산물 등 상대적으로 민감한 나머지 30%의 상품은 본 협상에서 충분히 논의하면 된다. 원자바오 중국총리도 한중 FTA는'쉬운 것부터'하자고 했다.
본 협상 체결 후에도 성과확대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서비스, 투자, 지재권, 경제협력 등 국내 제도변화를 포함하는 경우가 많은 이슈는 특히 그렇다. 본 협상 때 모든 것을 걸기보다는 오히려 지속적 논의구조 마련이 중요하다. 협상체결 후에도 협상에 준하는 의제 범위와 강제력을 가진 보충협상이나 고위급 경제협상을 정례화해야 한다.
■ 주장환 한신대 중국지역학과 교수
"포괄적 수준의 접근은 되레 협상 장기화 불러"
한중FTA는 한미FTA 이상의 파장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현재 중국과의 무역에서 가장 많은 흑자를 내고 있다. 이밖에 명확한 수혜ㆍ피해 산업의 구분, 대기업 선호ㆍ중소기업 반대, 陸薩?수출의 77.8%가 중간재인 특수한 한중 교역구조 등이 한중 FTA의 특징적 요소들이다.
이런 유형의 FTA는 전형적으로 경제적 실익은 없고, 국내 이익집단간 갈등만 증폭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럼에도 한국이 중국과의 FTA를 추진한다면 반드시 고려할 부분이 있다.
먼저 한중 FTA는 한국의 기존 FTA 정책의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의 FTA 정책은 (상품무역뿐만 아니라 투자와 서비스시장 개방을 포함하며 무역 규범과 다양한 정책조율도 망라하는) 포괄적이고 높은 (관세 양허)수준의 FTA 추진이었다.
그러나 중국에도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협상 장기화는 물론 국내 피해계층 및 산업의 격렬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따라서 민감품목을 제외하고 서비스ㆍ투자ㆍ기타분야에 대해서는 단계적 논의의 틀을 구축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한중FTA는 두 단계로 나눠 접근해야 한다. 비 민감품목을 중심으로 협상 범위을 설정하고 대신 관세양허 수준은 초기에 개방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다음으로 민감품목과 비공산품 분야의 단계적 개방과 양국간 경제 통합의 미래를 긴밀히 협의하고 실천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마련해야 한다.
나아가 이번 기회를 통해 민주적 통제에 의해 지배되는 개방협상의 모범을 만들어야 한다. 개방을 왜 하고, 어떤 식의 개방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 합의의 수준에 개방 수위를 맞춰야 한다.
■ 곽동원 AT커니 파트너/ "韓, 中이 포기할 수 없는 파트너로 바뀌어야"
한중 FTA는 한국이 세계 경제 주축의 일원으로서 위상을 확보하기 위한 선택이 아닌 필수조건이다.
첫째,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시각을 잃지 말아야 한다. 한국과 중국, 그리고 차후 일본을 포괄하는 동아시아 단일 시장, 단일 통화권을 염두에 둔 거시적 접근이 바람직하다.
장기적으로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의 위상은 현저히 약화될 가능성이 높고, 한중 양국의 실물경제 성과를 달러 또는 달러 표시 자산 위주로 축적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도 언젠가 해결돼야 한다. 한중 FTA는 이 같은 장기적 지역 비전을 공유하면서 공동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첫 걸음이어야 한다.
둘째, 중국에 있어 현재 한국은 냉정히 말해 경제적으로'있으면 좋은'수준의 상대일 뿐 필수불가결한 존재는 아니다. 중국의 급속한 발전으로 한국이 중국보다 우위에 있는 부분은 1인당 국민소득과 소수 산업에서 보유한 10년 미만의 기술격차뿐이다. 한중FTA를 통해 한국을 '포기하기에는 대가가 너무 큰'중국의 파트너로 업그레이드 시켜야 한다.
셋째, 포괄적 FTA를 서둘러 체결하는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중은 경제발전 단계의 차이 및 현 시점에서의 개방 수준의 격차, FTA 체결 시 예상되는 자국내 사회경제적인 이슈들로 주요 산업 부문, 특히 금융 및 건설 등 인프라와 서비스 분야 등에서 상호 윈윈 모델을 단기간 내 이끌어내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협상초기에 시행착오의 최소화를 통해 작더라도 가시적 성과를 이루고 향후 보다 광범위한 협력을 위한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는 단일 시장, 단일 통화권으로 나아가기 위한 가장 근본적 전제조건이다.
베이징=장학만특파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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