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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맛을 만드는 사람들] <19> 시오 코나 베이커리 대표 전익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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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맛을 만드는 사람들] <19> 시오 코나 베이커리 대표 전익범

입력
2010.09.09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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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만들어진 드라마 한 편이 우리의 식생활을 발전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일이 잦아졌다. 드라마 주인공 삼순이를 통해 디저트 혹은 제과 제빵을 다루는 파티시에라는 직업이 널리 알려졌고, 고집스럽지만 가슴은 따뜻한 조리장이 등장하는 드라마로 주방의 뒷이야기와 요리사들의 현실, 파스타의 종류와 요리법 등을 배웠고, 장금이를 통해 한국 음식의 멋을 재발견 했었다.

이번 시즌엔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열풍으로 ‘제빵왕’이란 단어가 널리 유통됐다. 드라마를 통해 묘사되는 음식업 종사자들의 모습이 얼마나 현실적이냐 하는 분석과 비판보다는 대중적으로 즐길 수 있는 매체를 통해 우리 모두의 식생활이 조금은 더 풍요로워진다는 생각이 앞서 ‘먹을 것 만드는 주인공’이라는 존재는 언제나 반가운 선물이다. 그래서 요즘 선물같이 들리는 제빵에 대해 명쾌한 설명을 해 줄 사람을 만나 보았다. 경기 용인시 죽전의 명물로 이름난 베이커리 시오 코나(031-889-3326)를 운영하고 있는 전익범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촬영을 위한 빵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일부러 매장에서 판매되지 않는 호밀빵을 새로 반죽하고 발효하고 성형하여 구워 준 전 대표는 이 빵이 본인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말문을 연다.

“96년 처음 일본 공항에 도착해서 그 길로 찾아간 어느 빵집에서 면접을 겸해 시험을 치러야 했었어요. 크루아상과 바게트는 지정 주제, 나머지 한 가지의 빵은 자유주제였는데 그때 제가 만들었던 빵이 바로 이 호밀빵이었지요.” 본인의 인생에서 터닝 포인트가 되었던 날, 그날의 영광을 함께 했던 호밀빵은 전 대표에게 빵 그 이상의 존재다.

40대 초반의 파티시에 전 대표는 서울 토박이다. 어릴 적부터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자동차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으로 기계공학과에 입학했지만, 군 복무로 학교를 떠나 있으면서 본인의 참 길이 제빵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손으로 무얼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요리와 제빵을 생각했어요. 하지만 제 성격에 제빵이 더 맞을 것 같았고 왠지 매장도 늘 평화롭고 예쁘게 꾸밀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무엇보다 제빵은 장래성이 있는 분야라는 판단이 컸죠.”

그렇게 제대와 함께 찾아간 곳이 신라당 베이커리였고, 1992년부터 2년 정도 머물렀다. 그곳에서 눈을 감고도 빵을 정확히 만들어내는 30년 이상 된 장인들의 제빵 솜씨에 매료되었고, 앞 세대 제빵사들보다 논리적인 이론과 지식을 쌓기 위해 대한제과 학원에서 교육을 받게 된다. 이후 다시 6년이라는 실무기간을 더 지내고 나서야 일본 유학길에 오른 전 대표는 그간 갈고 닦은 실력으로 취직이 된다.

“일본 제과점 취직은 그 때까지 거의 10년을 배워 오면서 쌓인 자만이 단번에 무너지는 계기가 되었지요. 듣도 보도 못한 재료도 너무 많았고, 말도 통하지 않는 큰 주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초심으로 돌아가 그저 열심히 매달리는 것뿐이었습니다.”

이렇게 ‘일본에 왔으니 배울 것을 다 익히겠다, 그리고 빵의 본고장 프랑스로 나는 가겠다’는 꿈이 늘 가슴에 있었다는 그는 꿈이 있었기에 하루하루 고된 일과를 견딜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99년 도쿄제과학교까지 마친 후에도 그는 학교에 남아 제빵 수업을 스스로에게 더 강요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이 되어 몇 년을 더 보내는 동안 그간 배웠던 맛과 기술이 온전히 자기만의 것으로 거듭났다. 남의 나라 주방에 처음 발을 들이면서 경험했던 은근한 따돌림을 성실함과 배려로 이겨낸 경험으로 학생들에게 늘 주방에서의 배려를 강조했다는 전 대표는 실제로 본인에게 모나게 굴었던 주방 식구들이 이별 선물로 각자의 필살기를 적은 레시피북을 선물했을 정도로 주방에서 조화를 이뤘다고 한다. 제 아무리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기술과 맛의 감각이 있어도 결코 혼자서는 완성할 수 없는 일이 제빵, 특히 매장에서 팔아야 하는 빵을 만드는 일인 것이다.

일본에서 많은 가르침을 받은 파티스리 드 후지우 베이커리의 대표 후지우 선생님과 귀국 후 2년을 몸담았던 리치몬드제과의 현 사장 권상범 명장을 스승이라 말하는 전 대표. 전자에게는 빵과 그 재료에 대한 고집을, 후자에게는 경영자로서 갖춰야 할 자세를 배웠다고.

“도쿄제과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시절에도, 그리고 내 주방을 운영하게 된 지금에도 늘 ‘마음을 사라’고 강조합니다.” 모질게 구는 주방 팀원의 행주를 내 것과 함께 삶아주고, 보기 싫은 녀석의 제빵 도구를 먼저 챙겨 주다 보니 팀원의 작업 속도가 전반적으로 호전되면서 사이가 멀던 이들과도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더란 말이다. 서로의 마음을 사는 주방, 그런 팀워크로 만들어지는 빵은 고객들의 마음을 살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빵을 좋아하는 식객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

멋진 빵맛의 중심은 엄선된 재료와 발효, 그리고 굽기라는 삼박자로 만들어진다. 특히 빵의 재료를 가려내고 구분해 낼 줄 아는 미각은 본인의 노력에 의해서만 길러지는 감각이므로 많이 먹어보고 매사에 공부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세밀한 부분까지 걸러낼 줄 아는 입맛만이 더 완벽한 빵에 다가설 수 있는 것이다. 발효와 굽기의 과정은 시간의 예술이다. 모든 것이 조금만 덜하고 더해도 180도 다른 맛의 결과로 돌아온다. 한 번 구우면 그것으로 끝. 이미 구운 빵이 마음에 차지 않으면 내 주변의 모든 이가 괜찮다 하여도 도공의 마음이 되어 깨뜨려 버리고 싶은 심정이 된다. 이렇게 매일을 살다 보면 연차가 늘수록 제빵이 쉬워지기는커녕 점점 더 어려워 질 뿐이라 말하는 전 대표.

일본 체류 시절 거두었던 유수 국제 대회에서의 화려한 수상 경력, 결국 계획대로 프랑스에 머물게 된 동안 수 없는 밤을 지새며 본토의 파티시에들과 벌이던 빵맛에 관한 토론, 멋진 스승들에게 전수 받은 장인의 자세는 그가 만드는 구수한 빵 껍질로, 식빵의 보드라운 결로, 그림같이 아름다운 케이크의 빛으로 매일같이 태어난다.

“더 좋은 재료로 빵을 만들고 싶어요. 지금 만드는 맛보다 훨씬 ‘진짜’에 가까운 맛을 만들고 싶어요.”

전 대표가 자정이 가까워 오도록 강조하여 말하던 ‘진짜 맛’은 과연 어떤 경지일까 궁금해 하다 보니 맛에 대한 장인들의 끝없는 도전으로 우리 입이 즐겁다는 생각에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든다. 믿고 먹을 수 있게 만들어 줘서 고맙고, 믿고 먹어줘서 고마운 이들만 가득한 세상이 ‘진짜’ 맛있는 세상일 게다. 촬영을 위해 새로 구운 빵을 얇게 썰어 먹어 본다. 올리브유에 찍어 입에 넣은 빵에서는 나무 맛, 열매 맛, 풀 맛이 다 느껴진다. 사람의 정성과 시간이 힘을 합쳐 만들어낸 빵은 그 자체로 요리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는 순간이다.

박재은 푸드칼럼니스트 eatgamsa@gmail.com

사진=임우석 imwoo5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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