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탁 위 공포' 오염물질… 첨단 전자코로 단번에 잡는다
2003년 불량 만두소, 2005년 김치 기생충알, 2006년 학교 집단 식중독, 2008년 생쥐머리 과자와 멜라민 분유…. 최근 1, 2년 간격으로 잇따라 터진 식품 사고다. 사회경제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며 소비자 불안을 가중시켰고, 이는 정부 정책 불신으로 이어졌다.
안전은 삶의 질의 기본이다. 식품뿐 아니라 질병이나 환경오염으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일 역시 과학기술의 몫이다.
코와 입 속 단백질로 먹거리 검사
식품 속 잔류농약이나 독성성분, 항생물질, 내분비장애물질(환경호르몬) 같은 오염물질 분석 절차는 꽤 복잡하다. 일단 식품에 화학약품을 처리해 분석 가능한 시료 상태로 만들어 오염물질을 추출한다. 이를 농축시켜 크로마토그래피 같은 분석기기에 넣은 다음 결과를 해석까지 하려면 며칠씩 걸린다. 대형 장비와 비싼 시약, 고도로 훈련된 전문인력이 동원된다.
식품 사고를 예방하고 신속하게 대응하려면 절차가 간단하고 비전문가도 분석할 수 있는 실시간 비파괴 검출기술이 필요하다. 전향숙 한국식품연구원 산업원천기술연구본부 안전성연구단장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사람의 후각과 미각을 활용하자는 것이다.
코에는 냄새를 인식하는 후각 수용체 단백질이 약 370가지나 있다. 이들 단백질과 다양한 냄새물질의 조합으로 사람은 1만가지 이상의 냄새를 구별할 수 있다. 또 입 안에는 쓴맛 단맛 감칠맛 등 여러 가지 맛을 구별하는 수십 종류의 미각 수용체 단백질이 존재한다. 이 덕분에 사람의 후각과 미각은 어떤 화학물질보다 특정 냄새나 맛 분자를 정확히 감지한다.
전 단장이 이끄는 연구단에선 대장균으로 후각 수용체 단백질을 대량생산해 전자소자에 고정시킨 인공후각센서를 만들었다. 일종의 ‘전자코’다. 전 단장은 “화학물질로 만든 기존 전자코는 미량 검출과 정량 분석에는 한계가 있다”며 “후각 미각 수용체 단백질은 화학물질보다 민감도가 훨씬 높아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단은 전자코를 대기만 하면 식품 속 오염물질을 찾아내고 신선도까지 확인할 수 있도록 발전시킬 계획이다.
식품을 검사할 때 화학물질을 처리하지 않는 비파괴 방법으로 현재는 방사선이나 빛, 전자파가 쓰인다. 식품에 쪼였을 때 나오는 파동의 세기나 모양 등으로 오염물질 존재를 판단하는 식이다. 이들 방법은 포장상태에선 확인이 어려운 데다 양까지 정확히 측정하긴 불가능하다. 전 단장팀은 이 한계를 극복할 대안으로 테라헤르츠파를 주목하고 있다.
테라헤르츠파는 빛의 성질(투과성)을 함께 갖고 있는 독특한 전자파. 1초에 1,000억∼10조번 진동해 이름에 1조를 뜻하는 접두어 ‘테라’가 붙었다. 테라헤르츠파는 아직 외국에서도 기계부품이나 의료, 보안 쪽에 응용하는 연구가 대부분이다. 연구단은 식품오염물질 검출에 처음으로 테라헤르츠파를 적용할 계획이다.
10조분의 1 농도까지 검출
테라헤르츠파는 대기나 수질오염을 모니터링 하는데도 활용될 전망이다. 우덕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포토닉스센서시스템센터장은 “환경오염물질 검출 감도는 1,000배 높이고, 시간은 10분의 1로 줄이는 기술을 개발 중”이라며 “레이저를 이용해 고출력 테라헤르츠파를 발생시키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공기나 물에서 오염물질을 찾아내기 위해 지금까지는 주로 빛이나 화학물질로 만든 센서를 이용했다. 감도가 수십ppb(1ppb=10억분의 1)∼수ppm(1ppm=100만분의 1) 수준으로 제한돼 있다. 심하면 몸에 해로운 정도까지 농도가 높아져야 측정이 가능한 경우도 있다고 우 센터장은 귀띔했다. 게다가 대부분 외국산 기기다.
테라헤르츠파는 극미량의 물질에 쪼여도 반사나 흡수 정도가 명확히 나타난다. 덕분에 어떤 물질인지, 얼마나 있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상용화를 위한 관건은 두 가지. 현장에 들고 다닐 수 있도록 기기 덩치를 줄여야 한다. 오염물질에 흡수됐다 나온 테라헤르츠파는 에너지가 급격히 약해진다. 분석이 가능하려면 처음부터 에너지가 큰 고출력 테라헤르츠파를 쏴야 한다.
우 센터장이 이끄는 연구단은 빛 센서를 업그레이드하는 기술도 연구하고 있다. 기존의 빛 센서는 주로 빛의 세기 변화를 측정해 오염물질을 검출한다. 우 센터장은 “빛의 위상(파동의 변화 양상)까지 측정하면 감도를 한층 높일 수 있다”며 “ppt(1조분의 1) 수준의 오염물질을 실시간으로 검출하는 초고감도 센서 개발이 목표”라고 밝혔다.
진단부터 현황 파악까지 일사천리로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인수공통전염병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선 지난해 5월 첫 신종플루(인플루엔자A/H1N1) 감염자가 확인된 뒤 140명이 신종플루로 목숨을 잃었다. 조류인플루엔자(H5N1) 사람 감염은 국내에서 아직 발생하지 않았지만 닭과 오리에선 피해가 끊이지 않는다.
인수공통전염병을 확진하려면 검체를 화학물질로 처리하고 유전자를 증폭시켜 유전자 염기서열까지 ?曠瞞?한다. 10시간 이상 걸린다. 실제로 신종플루 대유행 때 정확도는 떨어지지만 빠른 간이검사와 정확도는 높으나 오래 걸리는 확진검사 사이에서 적잖은 혼란이 빚어졌다.
이에 원광대 의대 박현 교수 연구단은 검사 절차를 한 시스템에서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신속 정확한 바이오칩 개발에 나섰다. 박 교수는 “현장에서 이 바이오칩으로 진단한 결과를 곧바로 중앙으로 보내 개인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고 감염 현황까지 빨리 파악할 수 있는 통합시스템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돼지유행성설사병바이러스(PEDV)도 문제다. PEDV는 사람에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을 일으키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일종.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 따르면 국내 돼지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률은 16.6%, 치사율은 약 20%다. 박 교수는 “PEDV는 효과적인 백신이 없어 예방이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며 “우리 연구단에서 천연물을 이용해 새로운 면역증강제를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면역증강제는 효능을 높이기 위해 백신에 첨가하는 물질이다.
신종이나 변종 출현에 대비하려면 동물에서 유행하는 인수공통병원체의 유전자를 확보해 체계적인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것도 시급하다. 인수공통전염병에 따른 피해 정도는 바이러스의 감염력과 독성에도 달려있지만 사회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 "식품사고 규제만 급급… 예방기술 개발이 먼저죠"
“규제 중심이었죠. 식품산업에 대해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대응한 방식 말이에요. 업체를 단속하거나 기준치 만드는 데만 급급했어요. 사고가 일어난 뒤에야 부랴부랴 처벌하고 대책 마련했죠. ‘기본’이 무시돼왔기 때문이에요.”
전향숙(47·사진) 한국식품연구원 산업원천기술연구본부 안전성연구단장이 말하는 기본은 식품 안전이다. 국민건강과 복지를 위해선 기본적으로 식품을 안심하고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소리다.
“식품 사고를 예방하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이 나서야 합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공공복지안전연구사업의 일환으로 식품 안전 연구가 이뤄지기 시작한 건 고무적이에요.”
전 단장은 식품독성학자다. 다른 어떤 환경오염물질 분석보다 식품 속 유해물질을 찾아내기가 어렵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대기 성분은 대부분 알려져 있어요. 수질도 마찬가지죠. 여러 물질이 섞여 있다 해도 정확한 농도를 알고 있는 표준용액과 비슷하니까요. 식품은 달라요. 우리가 아는 거의 모든 물질이 복잡한 비율로 혼합돼 있어요. 그 안에서 한두 가지 물질만 찾아낸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때문에 훨씬 다양한 분석기술이 필요하다. 식품 종류별로 적용할 수 있는 분석기술도 제한돼 있다. 예를 들어 잔류농약을 검출하는 데는 적외선이, 조개 속 이물질을 찾아내는 데는 X선이 적합하다. 고기의 피하지방은 초음파로, 오이나 계란의 신선도는 자외선으로 판단한다. 여러 식품에 고루 적용할 수 있는 분석기술 개발을 위해 전 단장이 택한 게 바로 테라헤르츠파다.
“빛이나 전자파, 테라헤르츠파를 만나 오염물질이 일으키는 반응을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해야 합니다. 그래야 검사 후 바로 어떤 물질이 얼마나 있는지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해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오염물질 300개 이상에 대해 이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게 우리 연구단의 목표에요.”
임소형기자
■ 전자코 환경오염 측정장비 시장 급증세… 원천특허 확보 시급
세계적으로 노인 인구가 늘고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공공·복지·안전 기술에 대한 수요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점차 확대되고 있는 시장규모가 이를 증명한다.
고령인의 활동이나 장애인의 의사소통을 돕는 생체신호 인식장치의 세계 시장규모는 1997년 40억 달러에서 2010년 70억 달러로 1.8% 성장했다. 환경오염물질 측정장비와 서비스 시장은 2006년 417억 달러 규모를 기록했고, 2012년에는 667억 달러로 예측되고 있다.
기존 기술이 공공복지안전 분야로 영역을 넓히면서 신규시장을 창출할 거라는 예상도 나온다. 의료나 화학산업 쪽에서 ‘전자코’로 불리며 관심 받아온 인공후각센서의 세계 시장규모는 1998년 1억4,000만 달러, 2003년 2억 달러를 기록했다. 사람 후각 단백질을 응용해 민감도를 높인다면 시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공공복지안전연구사업단은 보고 있다.
하지만 공공복지안전기술의 국내외 수준은 아직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는 형국이다. 기존 제품을 업그레이드할 신기술이 대부분 실험실이나 임상시험 단계에 머물러 있다. 공공복지안전연구사업단이 노리는 점도 바로 이거다. 기술 한계를 극복하고 먼저 상용화 물꼬를 트면 시장을 선점하고 원천특허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들 연구단이 개발한 기술이 경제사회 전반에 미칠 장기적, 간접적 후방효과를 기대한다. 예를 들어 고령인의 건강증진과 활동지원 기술은 향후 경제활동 인력 확보와 건강보험 재정부담 해소로 이어질 거라는 관측이다. 장애인용 활동보조기기 개발로 관련산업 활성화와 고용창출 효과도 내다볼 수 있다.
임소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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