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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대북 지원을 말하기에 앞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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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대북 지원을 말하기에 앞서

입력
2010.09.08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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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동안 최근 북한을 벗어나 남한에 정착한 사람들을 면접할 기회가 있었다. 전에 알고 있던 정보를 확인하기도 하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기도 하였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남쪽 드라마나 영화가 생각보다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일부 특수집단이나 향유하는 것으로 알았던 남쪽의 대중문화가 지역이나 세대에 상관없이 일상적인 것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남북한 주민의 거리감 커져

남쪽 물품에 대한 선호도 대단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월급의 10%가 넘는 값을 치르고 산'한국산'비누를 오직 딸에게만 쓰도록 허락한 신의주 출신 엄마가 있었고, 평양에서 신발장사를 하던 할머니는 질 좋은 남한제(중국산이 아니라) 신발을 북의 친척에게 보내 이익을 챙길 길이 없는가 고민하고 있었다. 1990년대 처음 맛본 라면 맛의 감동을 강조하는 아저씨도 있었고, 함경도 미시 아주머니는 북쪽 젊은이 사이에는 남쪽 셔츠가 일종의 신분 과시라고 이야기했다.

면접의 주제는 대북지원 문제였는데, 기대만큼 골고루 분배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지역이나 직업, 성분에 따라 지원 물품을 경험한 차이가 있었다. 높은 자리나 힘 있는 집단에게 우선권이 가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어쨌든 남쪽 지원 물품이 오면 가격이 떨어진다는 사실이었다. 수요와 공급의 원칙은 이제 북한에서도 확실해져서 남한의 지원 식량이 도착할 즈음에는 쌀값이 떨어져'서민'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남쪽 지원을 기다리고, 식량 실은 배의 입항날짜가 알려지는 경우 식량 구입시기를 조절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이 많이 좋아한다는 드라마 이나 주인공 '최지우'에 대해 이야기하고'은나노'치약이 얼마나 비싸게 팔리는지 등등, 탈북자들과 수다를 떨다 보면 남북의 거리가 상당히 좁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또 많은 이들이 남쪽의 대북 지원에 고마워한다니, 적지만 내가 힘을 보탠 지원 물품이 배 곯는 북한 어린이들에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뿌듯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일들이 대부분'어제'일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남한 드라마를 보는 데 엄청난 정치적 용기(?)가 필요하며, 남쪽 영화나 음악 CD를 구하는 것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드라마나 음악이야 '짝퉁'에 강한 중국 것을 보고 쓰면 될 것이다. 진정으로 걱정되는 것은 점차 친숙해지고 때로는 고맙게 여긴 남쪽 문화나 사람들에 대해서 섭섭함과 이를 넘는 분노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핵에 목숨 걸고 정략적 협상에 탁월한 북한 지도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배급도 제대로 유지 못하는 무능한 국가에 아랑곳 하지 않고 끈질긴 생명력을 보인 북한의 보통사람들 이야기다. 중국 드라마와 배우에 익숙해지고 중국제를 인정하게 된다면, 그리고 남쪽에서 남아도는 쌀을 쌓아놓고 있는 사정을 안다면, 어렵게 좁힌 남북의 거리는 과거보다 오히려 더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북쪽 주민의 고통 돌보길

전쟁도 불사할 듯 하던 정부가 통일을 대비한 통일세를 이야기하고, 대통령은 여전히 실체가 불분명한'원칙'과'실용'을 토대로 남북관계를 전환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지구 반대편의 재해구호 활동에는 '국제적 책임'과 같은 갖은 수사로 생색을 내던 정부가 수해와 배고픔으로 고통 받는 북한 사람들을 도와준다면서 '긴급 구호'라거나 '정부가 아닌 적십자가 하는 일'이라는 등, 이해 가지 않는 변명에 급급하다.

정부의 정책이나 철학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한참 논쟁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 당장 확실한 것은 지난 2년여 동안 남북 주민의 거리감은 더욱 커졌고 삶이 고단한 북한 사람들의 고통도 한층 커졌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분명한 현실에 눈을 감는 한, 통일을 적극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거나 원칙을 토대로 대북 지원을 추구한다는 말이 '공정'하게 들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이우영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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