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고민을 덜어드리려 시작한 일인데, 특허까지 받을 줄은 몰랐어요”
여고생들이 집에서 간편하게 빚어 마실 수 있는 막걸리를 개발했다. 충주 예성여고 2학년 김보미(17) 박승아(17)양이 6개월 동안의 시험연구 끝에 개발한 ‘인스턴트KOREA막걸리’.원리는 컵라면과 흡사하다. 고두밥과 누룩, 오곡, 줄풀 등 재료가 든 플라스틱 통에 약 1.5리터의 물을 넣고 서늘한 곳에 놓아두면 4,5일 뒤면 발효해 막걸리가 되는 것이다. 일부 첨가물과 재료 양의 차이에 따라 맛도 세 가지. 기호에 맞는 막걸리를 골라 만들어 마실 수도 있는 셈이다.
김양과 박양은 이 인스턴트 막걸리로 지난달 26,27일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열린 제56회 전국과학박람회 농수산 부문 특상을 수상했다. 이들은 유통공정까지 혁신한 이 막걸리에 대해 지난 7월 특허출원을 신청, 현재 심사가 진행 중이다.
이들이 막걸리 개발에 나선 것은 같은 반 단짝 친구였던 지난해 이맘때부터. 여름방학을 맞아 농사를 짓는 할아버지 댁에 들렀다가 두 분 모두 남아도는 쌀 때문에 골치를 앓는 것을 보고 “쌀 재고량을 줄이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뜻을 모았다고 한다.
쌀 막걸리를 생각해 낸 이들은 우선 책과 인터넷을 이 잡듯 뒤져 막걸리 빚는 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과학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건국대 충주캠퍼스에서 제공하는 학생실험실습실에서 ‘맛 좋고 영양가도 있는’신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시험 연구에 들어갔다. 세 달여 동안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쳤다. 무엇보다 술 맛을 보고 비교하는 일이 어려웠다. 시제품이 나오면 가족과 애주가인 친척아저씨, 동네 어르신들에게 시음 평가를 부탁했다. 학교 인근 식당 단골 손님들을 대상으로 품평을 받기도 했다. 김양은 “시중에 나와있는 모든 막걸리를 시음해보는 과정에서 작은 숟가락으로 조금씩만 맛봤는데도 알딸딸해져서 혼난 적도 있다”며 살짝 웃었다.
두 여학생은 이렇게 주변의 도움을 받아가며 실패를 거듭한 끝에 쌀과 보리, 조, 콩, 기장 등 오곡을 이용한 막걸리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전통 주조법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오곡을 모두 담은 막걸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주조법은 단순해 보이지만 술 맛은 시중의 여느 막걸리 못지않다. 주 원료인 오곡에서 배어 나오는 감칠 맛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첨가물인 줄풀의 효능 덕분에 바닥에 가라앉는 앙금이 훨씬 적은 장점도 있다. 오곡막걸리는 지난해 말 신청 한 달 만에 특허등록을 마쳤다. 두 여학생은 한국 고유의 술을 세계에 알리자는 의미로 이 막걸리에‘KOREA막걸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과학을 좋아해 학교에서 ‘김박 창제반’이라는 탐구반을 꾸려 운영중인 두 여학생은 꿈도 닮아 “대학에서 식품가공학을 전공해 우리의 전통 술을 더 연구 개발하고 싶다”고 말했다.
충주=한덕동기자 dd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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