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저녁, KT 광화문 사옥 1층 강당 강단에 봅슬레이 국가대표 김동현(23)이 섰다. KT의 도움으로 인공와우수술을 받아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150여 명의 청각장애인들이 모인 자리. 그는 수화로 인사를 건넸다. 그 역시 청각장애인. 하지만 지난달 말 KT에서 지원한 인공 와우 수술을 받아 소리를 듣게 됐다. 인공 와우는 청각장애인이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귀에 삽입하는 인공 달팽이관. 수술비만 1,000만원이 넘는다. 김동현은 이 자리에서 장애를 딛고 국가대표 선수가 된 과정을 들려줬다.
김동현은 장애를 딛고 봅슬레이 국가대표로 발탁돼 해당 종목 사상 처음 동계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올해 2월 열린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는 결선에 올라 수십 년 역사를 지닌 일본을 제치고 19위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열대 자메이카의 동계 올림픽 봅슬레이 출전 선수들의 이야기를 빼 닮은, 한국판 '쿨러닝'이었다.
그는 날 때부터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래서 크게 불편한 줄도 몰랐다고 한다. 대신 다른 사람의 입술 움직임을 보고 대화 내용을 파악하는 훈련을 했다. 부모님은 그의 사회성을 길러주기 위해 일반 학교에 보냈다. 독순술이라는 특별한 재주와 밝은 성격 덕분에 그는 많은 친구를 사귀었고, 워낙 축구를 좋아해 중학교 때는 스스로 축구부를 만들어 주장을 하기도 했다.
김동현은 연세대 체육교육학과에 진학했고, 2학년 때인 2007년에 어렵게 모은 돈으로 오른쪽 귀만 인공와우 수술을 했다. 그는 "수술 전 소원이 전화 통화였다"며 "수술 후 남들에게 별 것 아닌 소음마저도 감미롭게 들렸다"고 말했다.
그리고 2008년 12월. 교정에서 벌어진 봅슬레이 서울시 대표 선발전 구경을 하다가 흥미를 느껴 곧장 도전해 뽑힌다. 그는 청력 대신 좋은 체력과 순발력을 타고 났고, 훈련된 시력이 있었다. 선발 일주일 만에 그는 일본 나가노에서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도 통과했다. 드라마 같은 일은 계속 이어졌다. 2009년 2월 그는 국가대표로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했고, 이후 7차례 출전한 대회의 합산 점수에 따라 최초 동계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했다.
경주에서 그는 가장 오래 썰매를 밀고 달려야 하는 브레이크맨이다. 하지만 한쪽 귀로만 듣다 보니 균형감과 방향감이 떨어진다. 대신 발달한 시각 덕분에 그는 빼어난 코스 파악 능력을 지녔다. 그는 "코너를 돌 때 썰매가 뒤집히지 않도록 모든 경기장의 코스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또 국가대표에 선발됐다. 그의 목표는 차기 대회인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 "이번에 왼쪽 귀도 수술을 받아 문제가 됐던 방향감과 균형감을 해결해 자신감이 한층 커졌어요. 지금은 조종수 역할인 파일럿 훈련도 받고 있습니다."
김 씨의 꿈은 장애인들을 위해 체육 활동을 펼치는 스포츠 외교관이다. 그래서 올해 연대 대학원에 진학했고 청각장애인들에게 특히 힘든 영어 회화 공부도 시작했다. 그는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꿈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장애가 있을수록 꿈을 가져야 하고 이를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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