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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 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극단 샐러드의 ‘여수,처음 중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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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 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극단 샐러드의 ‘여수,처음 중간 끝’

입력
2010.09.07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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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품에서 서구적 프로시니엄(세트와 관객을 갈라놓는 벽) 무대와 한국적 마당극 양식의 공존이라니! 관람 도중 극단측의 안내를 따라, 객석은 옮겨 다니며 극을 보았다. 극의 내용에 따라 객석과 무대의 위치를 바꿔가며 진행하는 극단 샐러드의 ‘여수, 처음 중간 끝’은 반란의 무대다. 형식적 실험에서 현재 한국인들의 허를 찌르는 내용까지, 우리의 타성에 반기를 들었다.

객석은 불편을 감수했다. 극단측의 요청으로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의 편한 좌석은 모조리 뒷편으로 밀려나 있었다. 극장은 커다란 마당으로 거듭났다. 게다가 관객들은 신발까지 벗어야 했다. 요컨대 객석은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 2007년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로 숨진 원혼들의 사연을 들으러 온 조문객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잠시 후 기자회견을 시작하겠습니다”라는 방송이, 이를테면 극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객석이 긴장한 것은 “핸드폰은 꺼달라”는 등 개막 직전 늘 듣던 소리가 아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의 다문화가족상담소 소장, 사기를 당해 왔다는 조선족 남자 노동자 등 등 당시 사건을 겪은 사람들을 포함한 현존 인물들이 무대 앞에서 기자회견 현장을 재현했다. 객석은 중국어와 통역이 섞여 진행되는 이 대목에서 연극 무대가 실제 현실을 끌어안는 새 방식과 맞닥뜨렸다. 실제 소장인 안선숙씨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말 한마디 못 듣고 병원에서 쫓겨났다”며 희생자들을 대신해 울먹였다.

무대는 냉정하다. 이 연극을 돋보이게 한 것은 주제에서 비롯된 호소력이 아니라, 다양한 형식적 실험이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면서 그들을 감금하는 철창을 보여주고, 시종일관 등장하는 전자 굉음 등 무대는 시청각적으로 동시대성을 이뤄내고 있었다.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요란스레 여수 엑스포를 홍보하는 아가씨 등 짐짓 의도된 키치적 대목은 우리의 자화상을 똑똑히 재현하고 있었다.

지난해 극단 샐러드를 창단해 이번에 극작과 연출로 나선 박경주(42)씨는 “이제 시각을 넓혀 이주 여성들의 문제까지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무대를 계속 만들어 가겠다”며 이 작품의 성과에 고무돼 있다. 1년 6개월 전부터 이 극단은 본부인 의정부에서 이주민연극아카데미를 운영, 오늘의 무대를 준비해 왔다.

내용적, 형식적으로 타성에 빠진 기존 연극계를 맹성하게 하는 듯한 이 무대는 나름의 어법을 개발해내기 위한 이 극단의 시간이 얼마나 치열했던가를 방증한다. 제12회 변방연극제 참가작으로 공연된 이 연극은 일단 막을 내린 뒤, 10월 의정부에서 한층 다듬어진 모습으로 관객들을 만날 계획이다.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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