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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원의 자녀 교육보감] <23> 듣기와 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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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원의 자녀 교육보감] <23> 듣기와 말하기

입력
2010.09.07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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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화목과 행복은 부모와 자녀 사이의 소통이 이뤄지는 정도에 달렸다. 사실 부모와 자녀가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사이라면 가정의 행복은 물론, 자녀의 성공도 함께 찾아온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대다수의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 사이의 소통에 문제가 있거나 단절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부모로서 자녀와 소통하려는 노력의 중요성은 뒷전으로 밀리고 부모의 경제력이나 학력, 거주지역이 중요한 것처럼 여겨진다. 자녀를 위해 헌신하는 부모가 이상적인 부모상이 되고, 엄마 주도성이 ‘성공 키워드’가 되면서 가정의 의사소통은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많은 가정을 상담하다 보면 자녀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못한 부모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물론 이들은 이 같은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이 누구보다 아이를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가까운 사람에 대한 정보를 캐묻는 TV 프로그램의 퀴즈 코너처럼 하나하나 확인을 하기 시작하면 대부분 당황한다. 이때 던지는 질문은 아이의 가장 친한 친구는 누구이고, 어떤 일을 하면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지, 평소 어떤 고민을 무엇인지, 좋아하는 선생님과 싫어하는 선생님은 누구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 왜 특정 과목을 싫어하는지 등이다. 이에 부모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거나 아이의 실제 생각과 큰 차이를 갖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자신이 알고 싶은 것 외에는 잘 모르는 것이다. 정작 알아야 할 자녀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듣기보다는 말하기에 익숙한 문화다. 특히 서열구조가 명확한 관계 사이의 대화는 서열 높은 쪽의 일방적인 말하기가 대부분이다. 그런 일방적인 말하기가 특별히 문제된다는 인식도 거의 없다.

종종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보게 되는데, 왜 아이들과 대화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적지 않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말을 하라고 해도 이들이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는다고 항변한다. 자신들은 들을 준비가 돼 있는데 아이들이 말하지 않으니 도리가 없다는 얘기다. 아이들의 반응은 정반대다.

말을 시작하기가 무섭게 금방 부모가 말을 자르고. 일방적으로 쏟아 붓기 때문에 말을 꺼내기가 두렵다고 한다.

부모와 자녀를 동시에 상담할 때도 안타까운 모습을 자주 본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데 필요한 아이의 생각과 정보를 부모가 거의 갖고 있지 않은 경우다. 확인해 보면 아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부모님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아이는 분명 말했는데 묵살했다고 주장하고, 부모는 들은 바가 없다고 아이를 압박한다. 진실게임을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아이들 대부분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주눅이 든 표정을 지어야 일단락이 된다. 한편 아이의 말을 듣기는 했는데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건성으로 듣고 흘렸다는 경우도 있다. 아이는 새 과외 선생님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아 결과적으로 도움이 안되고, 시간만 빼앗긴다는 의사표시를 분명히 했다고 한다. 하지만 부모는 비싼 과외비를 지불하면서 어렵게 구한 선생인데 아이가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서 핑계 대고 있다고 투덜댄다. 아이의 의사표시를 무시한 결과 1년 넘게 억지 과외공부를 하게 된 사례를 통해 정말 부모로서 반성하고 진지하게 배울 것이 있지 않을까.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는 말하기보다 듣기가 우선돼야 한다. 특히 손아래 사람인 자녀와의 대화에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우선 자녀에 대한 온갖 오해와 편견을 풀 수 있다는 점에서 듣기는 말하기 이상으로 효과적이다.

자녀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으면 이들에게 심리적 안정감과 함께 공부에 대한 의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아가 자녀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다보면 이들에 대한 이해가 넓어져 부모 마음도 안정된다. 그리고 자녀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회복되는 효과도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청소년들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부모가 늘 진지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면 심리적으로 어렵고 방황하기 쉬운 상황에서도 일탈행위에 쉽게 빠지진 않는다.

듣기에 서툰 대한민국 부모들을 위해 핀란드에서 창안돼 널리 활용되고 있는 ‘이야기 대화법’을 소개한다. 자녀가 편하게 말할 수 있도록 부모는 조용히 경청하는 방법이다. 원리는 간단하다. 상대방이 말을 시작하면 다른 상대는 절대 입을 열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다. 아이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부모는 아무 말 없이 그것을 받아 적어야 한다. 그런 다음 아이에게 읽어주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잘 표현됐는지 점검하도록 한다. 그리고 의견을 듣고 수정한다. 그것으로 대화는 끝이다. 자녀의 이야기에 진지하게 반응하도록 강제한다는 측면에서도 탁월한 방법이다.

자녀와의 대화에서 요체는 듣기다. 의도를 관철하려고 하기 전에 자녀의 이야기를 듣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사교육비를 많이 쓰면서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자녀의 이야기를 얼마나 진지하게 듣느냐가 아이 성적에 더 결정적인 영향력으로 작용한다.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 자녀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효과는 충분하다. 어설프게 부모의 생각을 전하는 것보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으로도 부모의 의도는 충분히 전달된다.

비상교육 공부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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