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첫 막을 올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제영화제다. 세계 3대 영화제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지만 최근엔 위상이 많이 떨어졌다. 한참 후발주자인 북미 최대 영화제 토론토영화제는 아예 “칸과 함께 우리가 세계 최고”라며 약을 올리고 있다. “거장들의 영화는 칸에 다 뺏기고, 이삭 줍기에 여념 없다”는 비아냥까지 듣는다. “상권을 장악한 마피아가 바가지를 씌워서 나타난 결과”라거나, “영화를 사고 팔 수 있는 필름마켓이 없기 때문”이라는 우울한 분석이 뒤따른다. 지난 1일 개막하며 올해 67회를 맞은 베니스국제영화제의 현주소는 세계 영화의 중심이라 하기 어렵다.
그래도 ‘썩어도 준치’라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 아무리 옛 영화에 비해 퇴색했다지만 올해 출품작을 보면 그 면면이 만만치 않다. ‘레슬러’ 등으로 이름을 높인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검은 백조’가 개막을 알렸다. 트란 안 홍, 미이케 다카시, 프랑수아 오종, 줄리안 슈나벨, 쉬커(徐克) 등 유명 감독의 신작 24편이 경쟁부문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다툰다.
여전히 세계 영화계에 녹록하지 않은 저력을 드러내고 있는 베니스영화제에서 한국영화는 주변을 맴돌 뿐이다. 홍상수 감독의 ‘옥희의 영화’ 등 3편이 상영되나 경쟁부문과는 거리가 멀다. 2005년 ‘친절한 금자씨’ 이후 한국영화는 5년 동안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시’와 ‘하녀’를 내보내고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서 최고상(‘하하하’)을 수상한 최근의 한국영화 위상을 감안하면 초라하기만 하다.
과거 한국영화는 베니스영화제의 단골손님 중 하나였고, 융숭한 대접도 받았다. 강수연이 1987년 ‘씨받이’로 여우주연상을, 이창동 감독과 김기덕 감독이 ‘오아시스’(2002)와 ‘빈집’(2004)으로 각각 감독상을 받았다.
올해는 한국영화 4편 가량이 경쟁부문의 문을 두드렸으나 베니스영화제는 손사래를 쳤다. 일각에선 마르코 뮐러 집행위원장의 중국영화 선호 탓이라는 의견이 흘러나온다. 2007년 한국 유명 감독이 베니스행을 확정 짓고 막판에 돌아선 것에 대한 괘씸죄 적용이라는 말도 떠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이유로 충무로의 지나친 칸영화제 편애가 꼽힌다. 너도 나도 칸에 몰리다 보니 베니스영화제 출품도 줄었고, 베니스영화제의 한국영화 대우도 인색해졌다는 것이다. 베를린영화제 진출 작품이 요즘 뜸해진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만 알아 주는 세태를 반영하는 듯해 씁쓸하다.
칸영화제가 최고 영화제라 하지만 누구나 칸에 갈 수는 없다. 영화제 진출도 눈높이에 맞춰 다양해질 필요가 있다.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