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통상부의 유명환 장관 딸 특채 파문을 계기로 고시 폐지안을 둘러싼 찬반 논쟁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정부는 사법시험, 행정고시, 외무고시 등을 내년부터 2017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할 방침이다. 정부는 2013년에 외시를 폐지하는 대신에 1년제 특수대학원인 외교아카데미를 통해 신규 외교관을 선발한다. 사시는 2017년에 완전 폐지돼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졸업자만이 변호사 시험에 응시할 수 있게 된다. 행시는 내년부터 5급 공채로 이름이 바뀌고 5급 공무원의 30%는 민간 전문가로 충원된다.
정부의 고시 폐지 방침은 다변화하는 국제 환경에 맞춰 공무원의 충원 채널을 다원화한다는 차원에서 기획됐다.
하지만 고시 폐지를 우려하는 의견이 적지 않다. 빈부, 성별, 학력에 상관 없이 동등한 기회를 보장해온 고시를 폐지하고 면접과 어학 능력, 자격증, 석·박사 학위 등으로 고위공무원을 선발할 경우 '기회의 공정성'이 깨진다는 논리다. 특히 능력과 면접을 통한 선발이 특정 계층의 자녀에 유리할 수밖에 없어 고시 폐지는 곧 '현대판 음서제도(봉건시대 전∙현직 고관 자녀의 무시험 채용) 부활'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한 외교관은 "지금도 외교부는 특채 형식으로 외국어 특기자를 많이 채용하는데 상당수가 외교관이나 해외 근무 대기업 간부들의 자녀가 선발된다"고 말했다.
여야 정치권에서는 고시 폐지 반대 목소리가 큰 편이다. 한나라당 정두언 최고위원은 최근 행시 폐지 방침에 대해 "취지는 좋으나 결과적으로 특수층 자녀를 위한 제도로 악용될 수 있다"며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도 고시 폐지 방침에 대해 "신분의 대물림이 나타날 것이므로 반(反)서민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상당수 의원들도 "고시를 폐지할 경우 유명환 장관의 딸처럼 힘 있는 사람들의 자녀가 채용되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고시 폐지론자들은 고시를 통해 고위공직자를 충원하는 방안을 고집할 경우 다원화되는 사회와 국제환경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외교통상 분야 전문가를 양성하려면 고시를 잘 치를 수 있는 능력뿐 아니라 적성과 다양한 전문지식을 갖춘 인재를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고시를 폐지하고 공무원 충원을 다원화하려면 이번과 같은 특혜 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공정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판석 연세대 교수는 "고시 비중이 줄어드는 것은 시대적 흐름"이라며 "선발 과정에서 생기는 공정성 시비를 막으려면 심사위원 중 부처 출신 비율을 최소화하고 외부 전문가 풀을 확대하는 등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인호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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