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갑 안 여는 국민들… 美 경제 '오 마이 갓'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나는 듯 하던 미국경제가 다시 휘청거리고 있다. 올 1분기 3.7%였던 성장률이 2분기에 1.6%로 뚝 떨어지자 '더블 딥'(경기가 일시적으로 상승했다 재하강하는 현상) 이야기가 다시 나오고 있다.
미국 경제가 좀처럼 회복세에 접어들지 못하는 이면에는 국내총생산(GDP)의 70%를 차지하는 개인소비의 부진이 자리하고 있다. 최근 4분기 동안 개인소비는 평균 1.7% 증가하는 데 그쳐 위기 전 수준(2005~2007년 평균 2.5%)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앞날이 불투명한 개인들이 소비 대신 저축에 열을 올리면서 개인저축률은 2006년 12월 2.4%에서 금년 7월에는 5.9%로 급등했다.
개인소비가 부진해진 가장 큰 원인은 장기간의 고용시장 침체이다. 이번 위기 중 실업자가 무려 850만명이나 생겼는데, 이중 약 70만명만이 재취업에 성공했고 나머지 780만명은 여전히 실직상태다. 실업률도 9% 중반에서 좀처럼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더구나 실업자의 절반 정도는 27주 이상의 장기 실업상태에 있고 120만명은 구직을 포기한 상태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취업시장 한파가 가시지 않자 일부에서는 고실업의 원인을 ▦주택경기침체 이후 거주이전이 제약되어 직업탐색이 어려운 점 ▦실업 상태가 장기화되면서 보유기술의 가치가 하락하고 있는 점 등 구조적 측면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실업뿐 아니라 주택가격 하락, 은행들의 대출심사 강화도 소비에 악영향을 미쳤다. 개인들은 대출을 추가로 받기 어려워졌고, 그 동안 빚을 내 소비를 하던 개인들이 부채상환에 나서고 있다.
고령층의 주요 수입원인 연금의 안정성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미래를 대비한 예비적 저축이 늘어나는 것도 소비부진 요인이 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공무원 연금인 캘퍼스(CalPERS)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2008~2009년 총 677억달러의 투자손실을 기록했다.
이밖에 소득계층별로 소비행태가 양극화되고 있는 것도 전반적인 소비증가를 억제하고 있다. 실제로 금년 들어 벤츠, BMW, 고급 스테이크 레스토랑인 머튼(Morton's) 등의 매출은 크게 증가한 반면 맥도날드를 제외한 대부분 저가 레스토랑의 실적은 부진하다.
7~8월중 소매판매와 소비자신뢰지수 등 일부 소비지표가 다소 개선되었지만 이는 단기적 현상에 그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개인소비가 본격적으로 증가하기 위해서는 고용여건 개선과 주택시장 회복이 필요하고 가계부채비율도 지금보다는 더 낮아져야 할 것이다.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1분기 127%에서 올 1분기 121%로 낮아졌으나 100% 정도까지는 낮아져야 소비가 본격적으로 재개될 수 있을 전망이다. 당장은 개인들이 지갑을 열도록 하는 긍정적 여건을 찾기가 어려워 보인다.
최근 미국에서는 지나친 소비중심 문화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는 다수의 중산층 가구가 '적게 소비하며 단순하게 살자'는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는 실태를 심층 보도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 특유의 소비문화는 20세기 초부터 오랜 기간에 걸쳐 고착화된 현상으로 쉽게 바뀌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개인소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의료, 법률 등 서비스 분야의 경우 소득여건이 뒷받침되지 않더라도 수요를 크게 줄일 수 없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미국 경제가 소비의존 패턴에서 쉽게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경제가 본격적으로 회복된다고 하더라도 과거와 같이 소비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상회하는 현상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임춘성 한국은행 해외조사실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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