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지주회사의 현직 최고경영자(CEO)를 고소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신한은행은 모기업인 신한금융지주의 신상훈 사장 등 전ㆍ현직 임직원 7명을 배임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신 사장이 2003~2009년 행장 시절 950억원의 부당 대출을 해 은행에 손해를 끼쳤으며, 자문료 15억원을 횡령했다는 게 신한은행 측의 주장이다.
은행 CEO가 직위를 이용해 대출 과정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주장이 사실이라면 금융회사로선 용서 받기 어려운 엄청난 범죄 행위다. 검찰은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로 고소 내용의 진위를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금융감독원이 조사 중인 라응찬 신한지주 회장의 금융실명제 위반 의혹도 함께 규명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번 고소 사건을 놓고 금융계에서는 라 회장 이후의 후계구도를 둘러싼 권력암투가 원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임직원 비리를 내부적으로 조용히 처리하던 관행과 달리 보도자료를 내 공개한 데다, 은행의 신뢰도에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은행장 교체 후 1년 6개월이나 지난 시점에 고소한 것도 이례적이다.
신한은행은 시가총액과 당기 순이익에서 국내 최대 은행인 KB금융을 압도하며 '금융계의 삼성전자'로 불리던 우량 은행이다. 1982년 창립 이래 30년 가까이 안정적 경영라인을 유지한 게 그 배경이라는 평가도 받아왔다. 그러나 후계구도를 둘러싼 진흙탕 싸움이 고소 사건으로 불거진 것이라면, 안정적 지배구조가 허상이었음을 여실히 드러낸 셈이다.
세계 각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업계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주의와 규제 완화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MB 정부는 금융업계에 대한 규제와 감독을 강화하는 세계적 흐름을 애써 외면해왔다. 그 결과 은행장이 잘못된 경영 판단으로 천문학적 손실을 내는가 하면, 금융지주사 회장이 은행을 개인 회사처럼 운영하며 자기 사람 심기에 급급한 볼썽사나운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금융감독 당국은 금융 CEO의 비리와 1인 지배구조의 폐해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