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이다.”
2일 신한금융지주에서 터져 나온 사상 초유의 전임 은행장이자 현직 사장 고소 건을 바라 보는 금융계의 시각은 한결 같았다. 가장 경영권이 공고했고, 가장 시스템이 안정돼 있기로 소문난 거대 금융그룹에서 어떻게 1,000억원에 가까운 행장의 비리가 나올 수 있는지, 그 진실은 무엇인지, 왜 고소라는 극단적 방법을 택했는지 소문만 무성해지고 있다.
금융권에선 이번 사태를 ‘수뇌부의 분열’로 해석하면서, 가장 안정적 지배구조를 가졌던 신한이었기 때문에 더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950억원 대출의 진실은
신한은행 측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950억원대 신 전 행장의 친인척 관련 대출 과정에서 배임 혐의가 있었다’고만 밝혔다. 추가적인 설명도 없었고, 담당자는 연락조차 되지 않았다.
문제의 업체는 경기 파주시에 위치한 리조트업체 K사. 금융권에서는 최근 워크아웃에 들어간 이 업체 주요 주주가 신 사장의 친인척이며, 호남 출신 정치인과 관련이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그러나 신 사장은 “대출 과정에 문제는 없었다”고 부인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3월 신한은행에 대한 종합검사를 실시하면서 이 대출에 대해 일부 문제점을 발견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당시 대출은 부실상태가 아니었고 대출 과정에서도 규정위반은 발견하지 못했다”며 “다만 대출의 조건으로 업체에 요구한 사항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아 신한은행 측에 이를 속히 조치하도록 ‘경영유의사항’으로 통보했다”고 전했다. 적어도 작년 3월까지는 이 대출이 검찰고소까지 갈 만한 사안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문제가 생겼다면 아마도 그 이후에 생긴 것 같다”고 덧붙였다.
왜 고소인가
금융계 인사들이 이번 사건을 두고 ‘이해하기 어렵다’며 입을 모으는 이유는 신한은행이 직접 검찰고소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왔기 때문. 이희건 명예회장의 명의를 빌려 공금을 횡령했다는 혐의는 비난 받아야 하지만, 그래도 가급적 밖으로 소문나지 않게 조용히 퇴진을 종용하는 것이 관행. 하지만 신한은행측은 보통 임원도 아닌 직전 은행장이자 현 지주 CEO, 그룹내 2인자를 검찰에 고소했으며, 그 사실을 ‘보도자료’형식으로 공개했다.
이 같은 신한은행측의 대응은 ‘신 사장과는 더 이상 같이 갈 수 없다’는 게 그룹 수뇌부의 뜻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신한에서 ‘수뇌부’란 곧 라응찬 회장을 뜻한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고소 내용을 보면 결국 은행장이 수년간 불법대출을 주도했다는 얘기인데 이는 신한이 그 동안 쌓아 온 금융사로서의 신뢰와 자존심을 한꺼번에 뭉개는 ‘자기부정’ 행위에 가깝다”며 “라 회장의 의지가 아니고서는 결코 강행하기 어려운 카드”라고 평가했다.
여러 갈래의 해석들
신한은행측은 이번 고소가 ‘불법행위에 대한 엄정한 대응’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입장이다. “자발적으로 내부비리를 척결하고 환골탈태하기 위해”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전임 행장의 사법처리를 요청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은행권에선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라 회장의 후계자로 ‘차기 회장’ 1순위로 꼽히던 신 사장이 하루 아침에 공적으로 몰리게 된 현 상황은 결코 ‘법대로 대응’만으로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최근 은행권에선 라 회장과 신 사장간의 갈등설이 심심치 않게 흘러 나왔다. 소문의 골자는 라 회장의 금융실명제 위반(차명계좌 개설)의혹 문제가 최근 불거지는 과정에 신 사장이 연루됐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는 것. 지난 해 무혐의 종결된 이 사안은 최근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의 의혹제기로 현재 금융감독원 조사가 진행 중인데, 라 회장은 신 사장 쪽에서 의혹사실을 외부에 흘린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 신 사장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고 펄쩍 뛰고 있지만, 어쨌든 두 사람의 사이는 이미 몇 달 전부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확고했던 신 사장의 후계자 위치도 최근 들어선 흔들렸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신 이백순 현 신한은행장이 급부상했으며, ‘라심(羅心ㆍ라 회장의 심중)’도 이 행장 쪽으로 기울었다는 게 은행권의 시각이다.
원인이 무엇이든 신한금융그룹은 이번 사태로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됐다. 타 은행의 한 인사는 “가장 지배구조가 안정적으로 보였던 신한에서 이런 일이 터졌다는 게 믿기 힘들다”면서 “ 신한의 공신력에도 큰 타격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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