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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원전 완역한 강신준 동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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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원전 완역한 강신준 동아대 교수

입력
2010.09.02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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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준(56)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가 칼 마르크스의 <자본> 과 인연을 맺은 것은 우연이자 운명이었다. 농협 조사부 직원으로 일하며 모교(고려대) 대학원에서 경제학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1987년, 동갑내기 고향 친구로 농협 인근에서 출판사 이론과실천을 운영하던 김태경 사장이 그에게 제안을 했다.

6명이 급조하다시피 <자본> 1권을 번역한 원고를 들고 와 감수와 교열을 부탁한 것. 그의 감수를 거친 <자본> 1권은 '김영민'이라는 가공의 역자 이름으로 출간됐다. 김태경 사장은 그러면서 "2, 3권은 실명으로 내고 싶다. 당신이 맡아달라"고 떠넘겼다고 한다.

민주화 바람이 불었지만 마르크스라는 이름에 드리워진 불온의 족쇄가 완전히 풀리지 않았던 당시 <자본> 의 실명 번역은 학교로 진출할 생각은 포기해야 할 모험이었다. "어차피 학교에 가겠다는 생각은 없었고 경력이나 쌓자는 생각으로 대학원을 다녔기 때문에 덜컥 번역을 맡았던 것이지요.

지금 다시 읽어보면 참 무모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우여곡절 끝에 번역한 <자본> 은 결과적으로는 그가 대학에 진출하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됐다. 1990년 정치경제학 교수를 모집하던 동아대에 지원했는데 별다른 연구업적이 없었지만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번역된 <자본> 덕분에 이듬해부터 강단에 설 수 있었다고 떠올렸다.

그가 이후 20여년 간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가르쳐 온 내공으로 다시 번역한 <자본> (길 발행)은 국내 최초의 독일어 원전 완역판이다. 이론과실천 번역본도 독일어 원전을 옮겼지만 공역이었고 그나마 지금은 절판돼 구할 수 없다. 김수행 전 서울대 교수가 번역해 잘 알려진 <자본론> 은 영어판을 옮긴 중역본이다.

강 교수는 "영어판도 훌륭하긴 하지만 영어에 비해 관념어가 많은 독일어 원전의 뉘앙스를 살리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는 2000년부터 다시 번역을 시작해 2008년 1권을 냈고 지난해 연구년을 맞아 독일 베를린에 머무르는 동안 속도를 내 2, 3권 번역을 마무리했다.

왜 다시 <자본> 인가. 강 교수는 "3권을 읽어보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자본> 3권에서 마르크스는 공황의 발생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마르크스 생전의 가장 큰 공황은 1847년의 금융공황이었습니다. 그 후 82년 만인 1929년에 대공황이 발생했고 또 79년 만인 2008년에 공황이 왔습니다. 80년 주기로 3번의 큰 공황이 발생했는데, 대공황이 3번 오는 동안 그 많은 경제학자 중에 공황의 근본적 메커니즘을 똑부러지게 설명한 이는 마르크스뿐입니다."

구소련과 동구권이 몰락한 90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는 흘러간 옛노래 취급을 받았지만, <자본> 번역을 위해 지난해 독일에 머물면서 그는 유럽의 '마르크스 르네상스'를 실감했다고 말했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 탓인지 <자본> 의 판매고가 껑충 뛰었고 <자본> 강좌 수강생도 늘었다고 한다. 지난해 독일 총선에서 약진한 독일 좌파당은 붕괴된 월 스트리트를 마르크스가 야릇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모습을 선거 포스터에 사용하기도 했다.

<자본> 의 우리말 번역판은 3,0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다. 이를 통해 마르크스가 전하려 했던 메시지는 무엇일까. 강 교수는 "경제적 민주주의의 이행"이라고 요약했다. 프랑스혁명으로 시민들은 정치적 자유를 얻었지만 그를 통해 얻어낸 경제적 부를 자본가들이 사적으로 취함으로써 자본독재라는 모순이 발생했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시각. 그런 맥락에서 한국 대기업들의 지배구조는 문제투성이다. "널리 퍼진 오해와 달리 마르크스는 결코 반(反)기업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기업이 커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커진 기업을 소수가 좌지우지하는 것을 문제시한 것이지요. '소유의 민주화'라는 <자본> 의 핵심 메시지는 한국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신상순기자 s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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