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공과금은 내가 낸다, 물론 인터넷 뱅킹으로. 주1회로 정한 ‘가정의 날’엔 무조건 칼퇴근한다. 퇴근할 때 아내에게 전화해 먹고 싶은 걸 물어본다. 큰 아이 숙제와 일기쓰기는 항상 내가 봐준다. 아내의 사소한 질문에도 성심성의껏 답한다. 무슨 일 있어도 산부인과는 같이 간다.’
최근 트위터에서 화제가 된 ‘둘째 가진 마누라 남편으로서 할 일’ 여섯 가지다. 전시기획업체 이플러스의 오준화(37) 온라인팀장은 이걸 올리고 나서 뭇 남편들의 ‘공공의 적’이 됐다. 오 팀장은 당당하게 자신을 엄마 같은 아빠, ‘대미(dammy, daddy+mommy)’라고 소개한다.
목욕시키고 밥 해주는 아빠
“웬만한 육아용품은 아내보다 훨씬 잘 알죠. 7살짜리 아들 목욕도 항상 제 몫이에요. 요즘은 아빠용 육아용품까지 나와 있어서 활용만 잘 하면 엄마 못지않은 아빠 되는 거, 어렵지 않아요.”
첫 아들이 태어났을 땐 오 팀장도 여느 남편들처럼 서툰 아빠였다. 자그마한 아기를 목욕시키려니 행여 놓칠까 불안했고, 안을 때마다 아기띠를 두르려니 영 어색했다. 안 되겠다 싶어 재질이 말랑말랑해 아이를 떨어뜨려도 크게 다치지 않게 만든 욕조와 말안장처럼 생겨 아이를 옆으로 앉혀 안을 수 있게 한 사이드케리어를 일부러 사다 썼다. 점점 아이 돌보는 일이 손에 익었다.
“육아가 세심하고 부드러운 일이라고들 생각하는데, 의외로 힘이 많이 들어요. 목욕시키고 안아주는 것도 그렇죠. 힘쓰는 일을 제가 도맡아 해서 그런지 아내가 얼른 둘째 갖고 싶다 하던데요.”
오 팀장의 아내는 건축설계사다. 육아보단 부동산이나 인테리어 쪽에 관심이 더 많다. 반면 오 팀장은 육아 전시회 기획업무를 하다 보니 자연히 정보를 많이 접한다. 그는 “최근 출산이나 육아 전시회에 평일 휴가까지 내고 참가하는 아빠가 눈에 띄게 늘었다”며 “아빠의 적극적인 육아 참여 없이는 출산율을 높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어회화 강사로 일하는 김지훈(35)씨네 세 아들은 점심때마다 아빠가 해준 밥을 먹는다.
“수업이 주로 아침과 저녁이거든요. 낮에 집에서 아내 혼자 아이들 돌보는 걸 보니 제가 안 나설 수가 없었죠. 원래 요리를 좋아하기도 했고요.”
내친 김에 김씨는 지난달 요리학원까지 다녔다. 양식은 유학시절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깨 너머로 배운 실력이 있지만 한식은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요리할 때 일부러 가루반죽이나 면을 여유 있게 준비해서 아이들에게 갖고 놀게도 한다. 최근엔 아기용품업체 아가방앤컴퍼니의 육아 웹사이트에서 웹작가 활동도 했다. 밥 해주는 아빠의 생생한 요리 노하우는 초보 엄마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김씨는 “아빠의 육아는 능력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고 말했다.
모르면 쑥스러워 말고 배워야
대미족, 거저 되는 거 아니다. 아이를 잘 돌보려면 그만큼 배워야 한다. 오 팀장은 첫 아들이 뱃속에 있을 때부터 육아강좌를 듣고, 다른 부모들의 육아 노하우도 빼놓지 않고 꼼꼼히 챙겼다.
“태아에게는 엄마의 고음보다 아빠의 저음이 더 잘 들린다는 걸 알게 됐어요. 아내 임신 중에 출장을 가야 했는데, 2시간짜리 테이프에 제 목소리를 녹음했죠. 제가 없는 동안 들려주려고요.”
전정욱(41) 매일유업 중앙연구소 식품분석연구팀장은 올 4월 온라인강좌 ‘행복한 아버지학교’를 수료한 뒤부터 다른 아빠가 됐다. 아침에 아이들 깨울 때 소리 지르지 않는다. 마사지하듯 팔다리를 주물러주고 온몸을 토닥토닥 지압해준다. 초등학생 아들딸은 아빠의 부드러운 손길에 짜증 대신 웃음 띤 얼굴로 잠에서 깬다.
“교육받기 전엔 아이들 독립심 키워준다고 각자 방 침대에서 재웠어요. 일부러 친구네 집에 가서 자라고도 했죠. 하지만 점점 대화가 줄었어요. 아버지학교를 통해 아이들에게 스킨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난 뒤 지금은 온 가족이 한 방에서 같이 잡니다.”
전 팀장은 아버지학교를 들을 때 직장동료는 물론 아내에게조차 알리지 않았다. 쑥스러워서였다. 하지만 이젠 주변 아빠들에게 대놓고 추천까지 한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혼자선 쉽지 않아요. 모르면 배워야죠. 평생학습이란 말도 있잖아요. 돈 많이 벌어다 주는 게 좋은 아빠인 시대는 지났으니까요.”
수퍼맨도 힘들다
가정과 직장을 병행하는 여성을 ‘수퍼우먼’이라 부른다. 아빠라고 다를 것 없다. 대미족 역시 ‘수퍼맨’이어야 한다. 남성 육아휴직도 있지만 현실은 언감생심. 회사서도 가정서도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사내에서 열혈아빠로 소문이 자자한 박준호(39) 그랜드 인터컨티넨탈호텔 객실부 대리는 주말이면 초등학생 아들딸을 데리고 캠핑을 떠난다. 틀에 박힌 도시를 벗어나 넓은 세상을 보고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싶어서다. 캠핑장비를 구입하고 손보고, 짐을 싸고 푸는 것 모두 박 대리 遲甄？
“솔직히 힘들죠. 요즘처럼 일 많을 땐 특히요. 하지만 지금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요.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나이가 되면 챙겨주고 싶어도 쉽지 않을 테니까요.”
그 역시 캠핑 다니기 전엔 여느 아빠들처럼 주말에 온종일 잠에 빠져 지냈다. 우연히 참여했던 캠핑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예 캠핑동호회에도 가입했다.
밥 해주는 아빠 김지훈씨 역시 밤 늦게나 새벽부터 강의하고 나면 당연히 피곤할 때 많다. 그래서 아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로 일부러 자신이 좋아하는 요리를 택했다. 김씨는 “육아는 의무만으로는 절대 못한다”며 “아이 돌보는 걸 두려워하거나 부담스러워하는 아빠들이 많은데,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으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아이 엄마 이해가 기본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다니는 이상민(가명·40) 연구원은 육아에 관심 많은 직원들이 모여 만든 사내 동호회 ‘맘마스 앤 파파스’ 회원이다. 회원 25명 가운데 남성은 4명이다. 기본 목적은 네트워크 확보와 정보교환. 장난감을 서로 빌려주기도 하고 학교 들어갈 때 어떻게 준비하는지, 학원은 어디가 좋은지 경험담을 나누면 많은 도움이 된다. 단지 이 뿐만은 아니다.
“직장동료 엄마들의 생각이 궁금했어요. 육아에 대해 아내와도 물론 얘기하지만 동호회에서 더 다양한 이야기를 듣거든요. 육아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는 엄마들의 고민도 생생하게 들었죠.”
그만큼 아내를 더 이해하게 됐다. 대미족 자격은 아내의 고충과 심정을 헤아리는 데서 출발한다. 김홍태(30) 남양유업 홍보전략팀 대리는 누나가 둘에 대학서도 여학생이 많은 국문학과를 다녔다. 그는 “여성들과 편하게 마음을 터놓았던 환경 덕에 육아에 대한 생각이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주말엔 아내에게 외출을 권해요. 걱정 말고 친구들과 식사도 하고 영화도 보라고 말이죠. 그 동안 전 10개월 된 딸과 장도 보고 서점도 가요. 우유 먹이고 기저귀 가는 거요? 기본이죠.”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 '육포아'… 육아를 포기하고 사는 아버지들, 그들의 솔직한 이야기
“아빠, 남자 노릇 하기 힘들지”라는 보험회사 광고 속 아빠는 아이와 잘 놀고 아내 말도 잘 듣는 대미족. 그러나 현실의 대다수 남자에게 대미족은 여전히 ‘공공의 적’이다. 육아라면 두 손 놓은 아빠들, 그들이 육아를 포기한 솔직한 심정을 들어보았다.
“나는 잘 하고 싶다. 애도 쓴다. 하지만 와이프한테 질책을 받는다. 내가 아이를 안으면 운다. 부성애 표현하기 어렵다.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어도 남성 대상 강좌나 교육과정을 찾기가 쉽지 않다. 아이 보는 기술은 없고 자신감은 떨어지고…. 아이를 보면 핀잔만 듣는다. 차라리 돈이나 벌지.” (김모씨·35·직장인)
“한창 일할 나이 아닌가. 일 잘하는 것도 자식 위하는 길이란 게 내 신념이다. 지금 아이와 같이 있으려고 일을 소홀히 하면 나중에 아이에게 더 미안하게 될지 누가 아나. 내 아버지처럼 아들에게 나도 세상 열심히 사는 아빠이고 싶다.” (이재원씨·33·직장인)
“큰 애 때만 해도 열심히 했다. 둘째부터는 자영업을 시작하면서 여유가 없어졌다. 시간적 여유가 아니라 정신적 여유가. 사실, 핑계…맞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의무라고 알고는 있지만 속으로는 내가 희생한다는 생각이 들거든. 솔직히 남자들이 나빠. 그냥 귀찮아서 그러는 거야.” (김모씨·45·자영업)
“젊었을 때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데…. 집에 와서 애 볼 시간이 있으면 쉬고 재충전해야지! 그러고도 아내한테는 왜 애들 이렇게밖에 못 키우냐고 큰 소리 치고 살았다. 예전에 보고 자란 할아버지 모습도 그랬고, 맞벌이였던 내 친구들도 그랬는데 뭐. 그런데, 아들과 관계가 단절되다시피 한 아버지들이 많기는 하다. 안타까운 일이다.”(박모씨·54·공무원)
“맞벌이 우리 부부에게 3살짜리 아들 키우기는 아내 전담이다. 내가 새벽 퇴근이 잦아서이기도 하지만 육아에 관한 한 아내가 몇 수 위다. 동화책 하나를 사도 인터넷에서 후기를 찾아보고 사니까. 나더러 그렇게 하라면? 솔직히, 귀찮다. 놀아주는 것처럼 몸으로 때우는 거라면 모를까.” (이대건씨·34·직장인)
임소형기자
김희원기자 hee@hk.co.kr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 친구 같은 아빠 지향하는 한국… 실천은 중국 아빠가 한 수 위
‘어젯밤에 우리 아빠가 /다정하신 모습으로 /한 손에는 크레파스를 /사가지고 오셨어요….’
동요 ‘아빠와 크레파스’다. 보통의 30∼40대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밤 늦게 크레파스를 그저 사다 주는 사람이다. 가뭄에 콩 나듯. 그것도 술에 취하지 않은 날이어야 한다. 대미족은 다르다. 사다 주는 건 물론이고 직접 크레파스를 들고 아이와 함께 그림을 그린다. 친구처럼.
국내 많은 아빠가 이상적인 아버지 모습으로 친구 같은 아빠, ‘프레디(friedy, friend+daddy)’를 꿈꾼다. 이 같은 변화는 이웃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두드러진다.
한국 아빠, 휴일엔 자녀와 함께 48.4%
일본 교육문화전문기업 베네세코퍼레이션의 베네세 차세대 육성연구소는 지난해 8월부터 올 3월까지 영유아 자녀를 둔 동아시아 3개국 4개 도시(서울 도쿄 베이징 상하이) 아버지 6,248명을 대상으로 육아실태 설문조사를 했다. 이상적인 아버지상을 묻는 질문에 4개 도시에서 공통적으로 ‘존경할 수 있는 아버지’나 ‘의지할 수 있는 아버지’라는 답변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특이한 점은 이상적 아버지상이 친구 같은 존재라고 답한 아빠가 서울에서 특히 많았다는 것이다. 1,046명 가운데 62.4%나 차지했다. 도쿄 아빠 1,602명 중에선 6.2%, 베이징과 상하이 아빠 각 1,800명 중에선 22.9%와 19.9%에 불과했는데 말이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평균 연령은 30대 중반. 우리나라에선 50∼60대 가부장적이고 무뚝뚝한 아버지를 둔 아들들 세대다. 연구소는 자녀 수 감소와 핵가족화의 영향으로 권위 있는 가장보다 친밀한 아버지 쪽으로 사회적 가치가 변화하는 추세가 반영된 결과로 봤다. 변혜원 베네세코리아 유아교육연구소장은 “국내 30대 아빠들은 자녀와 함께 하는 자상한 아버지에 대한 니즈를 갖고 있는 동시에 아빠 양육의 장점을 알리는 매스미디어의 영향도 많이 받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울 아빠는 휴일에 아이와 함께 특히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10시간 이상∼거의 하루 종일 아이와 지낸다는 응답이 48.4%, 베이징(34.0%), 상하이(30.8%) 아빠보다 눈에 띄게 많았다. 서울 아빠는 자녀 문제를 아내와 상의하는 빈도도 높다. 아이에 대해 아내와 매일 이야기한다는 응답이 서울에선 50.7%에 달했다. 도쿄와 베이징, 상하이에선 각각 35.3%와 38.6%, 38.2%에 그쳤다. 또 아이와 어울리는 일에 자신이 없다고 느낄 때가 있느냐는 질문에 ‘자주 있다’고 응답한 서울 아빠는 3.5%에 불과했다. 중국 아빠들은 10%를 훌쩍 넘었다.
공부 가르치는 서울 아빠 6%, 중국 아빠 25%
여기까지 들으면 우리나라 아빠 대부분이 이미 대미 자격을 갖춘 듯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아빠들의 인식 변화가 아직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행동’으로 이어지진 못하고 있다. 마음은 굴뚝이지만 실천은 멀었다는 소리다.
조사 결과 여러 가지 육아 활동에 참여하는 빈도를 거의 매일 또는 주 3∼5회라고 답한 비율은 한국과 일본에 비해 중국이 전반적으로 높았다. 아이 목욕시키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고 답한 아빠가 서울이 24.9%로 도쿄(7.4%)와 베이징(18.5%), 상하이(14.9%)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 또 아이를 거의 매일 직접 재워주는 서울 아빠는 18.5%, 아이에게 거의 매일 공부를 가르쳐주는 서울 아빠는 6.2%밖에 안 됐다. 중국 아빠들이 25% 안팎으로 높게 나타난 데 비해 대조적이다.
특히 교육과 관련된 육아 활동에선 한국 아빠들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아이 책이나 과외학습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주체가 누구냐는 질문에 ‘주로 내가 한다’고 답한 서울 아빠는 3.7%. ‘주로 아내가 한다’는 응답은 60%를 넘었다.
도쿄도 비슷한 양상이다. 이에 비해 중국 아빠들은 책이나 과외학습을 자신이 직접 고른다는 응답이 25%에 가까웠다. 자신과 아내가 결정하는 비율이 같다고 답한 경우도 47∼62%로 서울이나 도쿄와 차이가 컸다. 아빠가 아이의 학습이나 교육에 엄마 못지 않게 적극 개입한다는 뜻이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 아빠의 사랑 못 받은 아이, 대물림 가능성 높아
육아에서 아버지가 나름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물론 아빠 없이 자랐다고 꼭 문제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정서적 교류가 크게 부족하면 성장한 뒤에도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중요한 대상으로부터 사랑 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거나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받으면 아이가 자신감 없이 성장하기 때문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정서적 교류는 거의 없으면서 아이의 일상생활을 일일이 강요하고 군림하는 아버지이다. 아이들은 이러한 권위에 쉽게 분노의 감정을 갖고 반항적이 되며, 자존감 낮고 무기력한 아이로 성장할 수 있다. 더구나 이렇게 자란 아들이 아빠가 되면 자신의 어린 시절과 유사한 부모-자녀 관계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간혹 할리우드 스타들 가운데 어린 시절 사랑을 받지 못하고 아버지의 부재나 학대 등을 경험한 경우 스타성을 보이며 성장하다가도 갑자기 도박이나 마약에 빠지는 경우가 있는데 잘못된 양육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반대로 아빠와의 관계에서 충분한 사랑과 정서적 교류를 경험하고 자란 아이들은 스스로에 대해 소중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고 자존감이 높아지며 다른 사람과 의미 있는 관계들을 이루면서 성장할 수 있다. 또 최근 해외에서는 아빠가 자녀들과 놀아주는 시간에 비례해 자녀의 학업 성취도가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도 나오고 있다.
부모의 상은 자녀의 배우자 선택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임상 사례도 드물지 않게 보인다. 부모상이 너무 부정적이면 여기에 너무 집착해 다른 중요한 것은 보지 못한 채 정반대되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거나, 또는 스스로 인식 못한 채 병리적인 아버지상, 어머니상을 닮은 배우자를 만나곤 한다.
흔히 요즘 젊은 남자들이 과거보다 덜 권위적이고 여성스러워진 것이 아버지로 대표되는 남성상의 역할모델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아버지가 강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서 젊은 남자들이 나약해졌다기보다는, 아이를 한두 명만 낳아 키우면서 독립적으로 육아하지 못한 탓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육아와 관련해 이상적인 부모의 역할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이가 만 2세가 되기까지 유아기에는 부모가 받아주고 전적으로 돌봐주면서 안정적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만 5~6세가 지나면서는 작은 것부터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점차 아이 스스로 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율성, 독립성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아버지로 대표되는 남성상과 어머니로 대표되는 여성상의 장점들을 받아들이는 양육법이 바람직하다.
도움말=김재원 서울대병원 소아정신과 교수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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