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영증권은 지난해(회계연도 기준) 881억원의 당기 순이익을 냈다. 설립 이래 최대 규모. 국내 총 62개 증권사 중에서 12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신영보다 이익이 많이 냈던 11개 증권사의 면면을 보면 외국계 한 곳(크레디트 스위스)을 빼면 모두 임직원 2,000~3,000명, 점포 120~140개를 거느린 대형증권사들이다. 임직원 616명, 점포 26개가 전부인 신영과는 애초에 비교가 안 된다. 도대체 신영의 선전비결은 뭘까.
신영만 그런 것은 아니다. 부국증권, 한양증권, 유화증권도 있다. 이들은 지난 회계연도에 200억원 이상의 흑자를 냈다.
이 4개 증권사는 50년에 가까운 혹은 50년을 훌쩍 뛰어넘는 긴 역사를 갖고 있다. 부국은 1954년 설립된 증권사이고, 신영과 한양은 1956년, 유화는 1962년에 세워졌다. 반세기 동안 수많은 증권사들이 명멸했지만, 이들은 주인도 바뀐 적이 별로 없다. 요즘 잣대에선 좀 ‘촌스러워 보이는’ 사명도 예전 그대로다. 대형사 위주로 재편된 증권시장에서, 점포 인력 자본도 적고, 특별한 상품이나 특별한 마케팅을 펴는 것도 아닌데 이들 4대 증권사가 꿋꿋이 지탱하는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틈새를 뚫었다.
이들의 영업수익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자기자본 매매 수익과 IB(투자은행) 부문. 신영과 부국은 지난해 자기자본 매매 수익이 전체 영업수익의 50%가 넘었고, 유화도 28%나 됐다. 한양은 기업 자금 조달이나 인수 주선 등 IB업무가 29%다. 기관 투자가 영업을 많이 하는 한양은 주식위탁매매(브로커리지) 비중이 34%로 상대적으로 높지만, 다른 세 증권사의 브로커리지 비중은 20% 미만이다.
대형 증권사들의 경우 브로커리지 수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50~70%. 브로커리지 비중이 크다는 것은 일반 소매고객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한양증권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전에는 대형사든 중소형사든 모든 증권사의 수입원이 브로커리지였다”면서 “그러나 IMF사태 이후 고객들이 규모가 큰 증권사로 몰리면서 중소형사들은 새로운 생존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2000년 이후 온라인주식거래가 보편화됐지만, 이들 중소형사는 초기투자비용이 많이 드는 HTS(홈트레이딩시스템)쪽은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
이들이 눈을 돌린 곳이 대형사들이 당시만해도 별로 신경쓰지 않았던 분야. IB, 채권영업, 자기자본 매매 등이었다. 어차피 지점망이나 HTS로는 대형사와 경쟁하기 힘든 만큼, ‘사람’과 ‘전략’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신영과 유화는 고유자산 관리 ▦한양은 법인 영업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으며 ▦부국은 채권 분야에서 업계 5위 안에 든다. 부국증권 관계자는 “채권 영업은 전화기 한 대만 있어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외부 인력을 많이 채용해 영업을 강화했고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직후에 시중 금리가 떨어지면서 수익을 많이 냈다”고 말했다. 한양 역시 업계에서 기업금융, 법인영업 경력을 쌓은 사람들을 영입하며 IB부문을 강화해 왔다.
외형 확장보다 안정
대형사들은 앞다퉈 해외법인을 확장하고 스마트폰 주식거래 서비스까지 내놓으며 불꽃 튀기는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이들은 느릿느릿 황소걸음이다. 업계 몇 위에 오르느냐 보다, 안정된 수익구조를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가늘더라도 길게 가겠다는 전략이다.
신영증권 원국희(77) 명예회장은 ‘무리하지 않는 것’을 강조한다. 시장 점유율에 신경 쓰다 보면 시황이 나쁠 때도 수익을 내기 위해 무리를 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고객과의 신뢰가 깨지기 쉽다는 것. 신영은 실제로 원 회장이 회사를 인수한 71년 이후 올해까지 39년 연속 흑자를 냈다. 2007년 방한한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신영증권에 투자했다고 말했을 정도로 주당순이익과 주당순자산, 유보율이 업계 최고 수준이다.
한양 유화 부국도 모두 5년 이상 연속 흑자를 기록했지만 외형 확장 계획은 없다. 한양증권 관계자는 “지난해 내부적으로 자기자본이익률(ROEㆍ기업이 자기자본으로 얼마를 벌었는지를 보여줌)을 계산해 보니 업계 11위였는데 2013년까지 업계 7위로 올라서 더욱 내실 있는 회사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전체 자산 7,800억원 중 대부분을 채권이나 예금 등 안전자산에만 투자해 높은 이자 수익을 얻고 있는 유화는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바탕으로 향후 IB, 국제 금융 부문으로 사업을 특화 시켜나갈 계획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들 증권사는 전국적으로 점포가 많지는 않지만 한번 가보면 나이든 고객들이 많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며 “그만큼 충성도 높은 장기고객이 많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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