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이 아내한테 '엿장수 며느리가 됐던 거냐'고 물었대요.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난 거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뭐 어때요. 전 엿장수 아버지가 한없이 자랑스러워요."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청소년들에게 건전한 직업관과 꿈을 키워주려고 주최한 제5회 직업사랑 글짓기대회에서 '아버지는 엿장수'라는 작품으로 최우수상을 수상한 박태칠(50ㆍ전 공무원)씨. 그는 "제 글은 불효자였던 아들이 쓴 반성문"이라고 말했다.
가난한 어린 시절 박씨는 고향 경북 의성에서'엿쟁이 아들'로 불렸다. 그의 아버지는 엿장수였다. "원래는 교편을 잡으셨어요. 그러다 산천이 좋다시며 시골로 이사를 하고, 특별히 할 일을 못 찾다 엿장사를 시작하셨던 거죠."
그 탓에 박씨는 곤란한 일을 수없이 겪었다. 학년 초마다 부모의 직업을 묻는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도 못한 채 얼굴을 붉혀야 했고 친구들이 손으로 가위질 흉내를 내며 "자! 엿이 왔어요"라고 놀릴 땐 죽고 싶더라고, 가위질 소리만 들리면 골목길로 숨기도 했노라고 말했다.
"그러다 제가 며칠씩 밥을 굶어가며 '그만 두시라'고 떼를 썼어요. 결국 아버지가 가위를 내려 놓으시더군요. 그 길로 농사를 지으셨어요. 물론 남의 농사 거드는 거였죠."어쨌건 아버지의 노동으로 박씨는 대학에 진학했고, 9급 공무원 시험에도 합격했다. "아버지는 엿을 팔아 받은 헌 책은 늘 저에게 주셨고, 그 덕에 전 새로운 책을 읽을 수 있었어요. 그래 놓고는 엿장수 그만두시라고 그렇게 떼를 썼으니…."
그는 직장(대구 동구청) 탓에 대구로 이사했고, 시골로 돌아가자는 아버지의 청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파킨슨병을 앓던 아버지는 2001년 세상을 떴다.
아버지는 자유를 꿈꾸며 살았던 건지 모른다. 그래서 교사를 관두고 세상을 떠도는 엿장수가 됐고, 병으로 몸조차 가누기 힘겨워하면서도 땅과 강을 그리워했던 건지 모른다. 아버지는 '엿쟁이 아들'의 마음의 상처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바람처럼 떠돌고 싶은 꿈을 접었을지 모른다.
자신이 아버지가 된 그 아들은 이미 가버린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풍금, 피리, 기타, 하모니카 등 악기를 잘 다뤄서 동네 입구에서 연주를 하면 이웃들이 잔뜩 모여들곤 했어요. 밤 하늘 별을 바라보며 자연을 즐기신 분이셨어요."
25년간 공직자로 산 박씨는 2008년 6월 건강 때문에 명예 퇴직했다. 그래서 당신이 그랬듯 직업 없는 아버지를 자식들이 어떻게 바라볼지 걱정이다. 그는 "군 복무 중인 아들(20)과 고등학생인 딸(16)이 아버지 직업을 '무직' '실업자'로 적어야 하냐고 물어올 때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학교에서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가르치지만 세상은 귀천을 따지기 때문이다. 자녀들이 기죽을까 봐 염려스러웠던 걸까. 그는 퇴직 후 조경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올해엔 숲 해설사 양성과정도 마쳤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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