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에게도 2년차 징크스가 있다. 데뷔작으로 주목을 받았다가 두 번째 작품으로 추락하는 감독들이 꽤 많다. 적어도 관객 수라는 양적 측면만 보면 이정범(39) 감독은 그 반대다. 그는 2006년 ‘열혈남아’로 감독 호칭을 얻었지만 흥행성적은 67만 명에 그쳤다. 지난달 4일 개봉한 두 번째 영화 ‘아저씨’는 31일까지 463만7,961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을 모았다. “기분 좋긴 하지만 약간 어리벙벙하다”는 이 감독을 31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아저씨’ 제작사 오퍼스픽처스 사무실에서 만났다.
영화 구상 단계에서 주인공은 북파 공작원 출신의 60대였다. “캐스팅이 어려울 것 같다는 판단”에 40대로 연령을 낮추고 시나리오를 썼다. 송강호 설경구 김윤석 등을 주인공 물망에 올렸다. 친분이 있는 원빈 매니저에게 시나리오를 좀 봐달라고 부탁했는데 원빈까지 시나리오를 읽게 됐다. 곧 “원빈이 흥미로워 한다”를 말이 날아들었다. 40대 ‘아저씨’가 30대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 감독은 그렇게 충무로 캐스팅 1순위 배우와 일하게 됐다.
“내가 참 배우 복이 많다. 원빈은 잔머리를 굴리지도 않고 사람 자체가 진지하다. 원빈의 외모가 흥행에 큰 힘이 됐다. 아마 다른 배우가 그런 폭력을 휘둘렀다면 많은 관객들이 힘들어 했을 것이다. 원빈의 판타지 같은 외모가 폭력의 느낌과 잔혹성을 낮춰주는 효과를 준듯하다.”
영화 제목은 “(납치되는 소녀) 소미(김새론)가 가장 많이 쓰는 호칭이 아저씨라 쉽게 지은 것” 인데 주변에서 말이 많았다. “독립영화 제목 같다”거나 “흥행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등. 그래도 버텼다. “아저씨는 익명성을 지닌 호칭인데, 피가 섞이지도 않은 소녀를 구하려는 남자의 이야기라면 좋은 제목이다”는 생각에서였다.
원빈의 사실적인 액션이 화제가 되고 있는데도 정작 이 감독은 “액션이 드러나지 않게 만들려고 했다”고 밝혔다. “캐릭터에 더 중심을 두고 액션을 맞춰 갔다”라는 것이다. “태식(원빈)이 전직 특수요원인데 아이의 눈까지 뽑는 범죄조직을 보고 가만 있을까, 분노의 극한을 표현하면 어떤 액션이 나올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결국 휘몰아치기식 액션을 가져왔다.”
이 감독은 고등학교 때까지 태권도 선수였다. “계속 태권도를 하기엔 재미없을 듯해 인하대 영문과에 진학했다”지만 선수 경험은 ‘아저씨’에 꽤 도움이 되었다. 그는 “실제 싸움에선 중심을 잃을 수 있어 발차기를 안 한다는 걸 아니까 손을 이용한 액션 위주로 촬영했다”고 말했다.
“좀 수위를 낮춰 만들 생각은 없었냐”고 묻자 그는 “처음부터 청소년관람불가로 정해놓고 만들었다”고 답했다. “태식의 액션이 분노를 담고 있기에 (표현의) 끝까지 가야 했고, 15세 이상 관람가에 타협한다면 내가 영화를 못 만들 것이라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태식이 터전으로 삼은 전당포 세트는 이 감독의 부모님 전당포를 본떠 만들었다. 그는 “태식의 나이와 외모에 어울리지 않지만 임신한 아내를 잃은 사람이 마음의 감옥에 갇힌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전당포를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교도관을 제외하고 철창 안에서 일하는 사람은 전당포업자와 다이아몬드 세공업자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감독은 어려서부터 영화인을 꿈꾸지 않았다. “공군 말년 병장 시절 심심풀이로 시나리오전집을 읽다가 영화에 흥미를 느꼈다”고 했다. “나도 한 번 써보자”는 생각에 드라마 극본 공모에 응했으나 떨어졌다. “자존심도 상했고, 뭔가 만들어보고 싶기도 해서” 제대 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진학했다.
“영상원 들어갈 때도 감독 꿈은 딱히 없었다. 편집을 할까 고민하다 이왕 발을 들였으니 연출을 해보자 한 것이다. 나는 정반합, 중용을 좋아한다. 좋은 것은 흡수하고 나쁜 것을 버리는 그런 자세라면 죽을 때까지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고 싶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조영호기자 vold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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