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오락입니다. 하지만 부상은 진짜입니다.” 미국 프로레슬링 단체 WWE의 경고문이다. 각본에 의한 경기지만 경기 중 생기는 위험은 진짜라는 얘기다.
지난달 28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 출연자들의 부상도 진짜였다. 프로레슬링 경기를 앞둔 출연자들은 사람을 한 손으로 잡아 올려 땅바닥에 던지는 초크슬램 등 위험한 기술을 익히며 고통에 시달렸다. 정형돈은 머리에 입은 충격으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예능 프로그램이 왜 이래야 하냐고 할만하다. 안전 조치를 했다 해도 스케줄 맞추기도 힘들 만큼 시간에 쫓기는 연예인들에게 선수들도 하기 힘든 프로레슬링을 시킨 제작진은 비판 받을 만 하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고통 그 자체를 엔터테인먼트로 만들었다. 진짜 고통을 겪으면서 출연자들은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정형돈은 눈물을 흘리며 훈련을 거부했고, 박명수는 부상에 대한 걱정 때문에 마음껏 기술을 펼치지 못했다. 다큐멘터리도 실제 상황을 보여준다.
‘무한도전’은 5년 동안 같은 출연자들이 시청자들과 소통해온 프로그램이다. 그들이 프로레슬링을 통해 보여준 고통과 갈등은 시청자들이 궁금해 하던 카메라 뒤의 ‘진짜’ 모습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줬을 것이다. 늘 출연자들을 아우르는 유재석이 실제로 이들의 갈등을 중재하는 모습은 ‘무한도전’ 팬들에게는 엄청난 발견의 순간이다. 다큐멘터리처럼 실제 상황을 보여주지만, 캐릭터에 몰입한 시청자들은 어떤 드라마보다 손에 땀을 쥐었을 것이다.
‘무한도전’은 누구도 부인 못할 고통이라는 ‘리얼’로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마지막 화장을 벗겨내면서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냈다. 그건 다큐와 예능 어느 쪽도 아닌 새로운 무엇이자, ‘무한도전’처럼 오랜 역사를 가진 프로그램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프로레슬링 편 이후, ‘무한도전’은 무엇을 하든 과거보다 시청자들에게 더 진정성을 느끼게 할 수 있을 것이다. WWE가 그러하듯, ‘무한도전’도 “이것은 오락입니다. 하지만 리얼입니다”라고 자랑스레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독특한 성과는 연출자인 김태호 PD도 예상 못한 일일 것이다. 그가 이런 위험을 예상하고 프로레슬링 편을 제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작진은 프로레슬링 이상의 극단적인 도전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제 할 수 있는 건 더 ‘리얼’한 도전이 아니라 ‘리얼’을 대체할 새로운 기획이다. 리얼의 끝까지 도달한 ‘무한도전’은 이제 리얼 버라이어티 쇼가 아닌 새로운 형식의 쇼로 나가야 할 때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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