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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법 없이 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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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법 없이 사는 사람들

입력
2010.09.01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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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 한국은 고위 공직자가 되고픈 이들의 도덕성과 위법 사안 등을 놓고 연일 뜨거운 설전이 오가고 있다. 또 지나친 사면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도 적지 않다. 미국에 잠시 와 있는 필자에게도 그 기운이 전달될 정도이니 매일 소식을 들어야 하는 국민들의 답답함이야 어떠하겠는가?

현대 윤리학 및 정치철학 연구의 대표적인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찰스 테일러는 서구 사회가 근대화 과정을 통해 '도덕질서'를 어떻게 상상했는가를 물은 적이 있다. 개인의 권리, 자유와 평등으로 쉽게 언급되는 근대 질서의 기초 개념들이 어떻게 근대인들 누구나의 마음 속에 각인되었는지를 계보학적으로 규명함으로써, 서구 근대 사회 탄생 과정을 성찰하였던 것이다.

그이는 서유럽 이외의 나라들에서 '도덕질서'의 사회적 상상 과정은 서구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라고도 언급하였다. 조선 후기 사회질서의 상상들이 어떻게 현대로 이어졌는지 늘 설명하고 싶었던 필자는 조선 후기의 도덕질서를 지배하는 '상상들', 즉 암묵적인 전제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자문해보았다.

떠오른 생각은 '법 없이 사는 사람'이었다. 조선사회는 법 없이도 사는 사회를 궁극의 가치로 추구하였다. 이것이 조선 통치철학의 바탕이었던 주자학의 아이디어였다. 양심에 털이 난 소인배들은 사라지고 진정한 도덕성의 소유자인 군자들만이 사는 세상, 이것이야말로 법 없이도 사는 사람들의 지상 천국이었다. 조선 후기에 정부가 주도한 법률 개정과 도덕 교육은 양반 사족을 넘어 모든 인민들에게 양심과 도덕을 회복하여 인간답게 살도록 요청하는 것이었다. 이를 역사학자들은 '조선 후기의 르네상스'라는 말로 표현하기 좋아한다.

그 이상은 진정 아름다웠다. 모두가 양심과 도덕성을 회복하여 인간다워지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때문에 범법자를 법대로 처벌하지 않고 교화를 앞세웠다. 재위기간 1,000여 건의 사형 사건을 심리했던 정조는 대부분의 죄인들을 사면하거나 감형하였다. 그는 사람들의 반성과 인간성 회복을 희망하였다. 그러나 사회는 이런 기대와는 반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도덕성이 결여된 이웃을 패륜이라고 때려죽인 범인을 의로운 자라고 용서하자, 백성들은 인륜에 어긋나거나 도덕성이 결여된 자를 죽이더라도 용서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만 떳떳하다면 위법도 문제없다는 생각이 점차 확산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조선 정부는 법으로 살인자를 처벌하기보다는 패륜을 징계한 그의 도덕성을 장려하는 방식으로 사회를 통제하려 했다. 그렇다고 도덕적 성찰 없는 법의 엄격한 적용만을 유일한 해결책이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정의롭지 않은 법은 그 자체로 너무나 위험하며, 적법을 가장하여 정의를 위태롭게 하는 자들 또한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국가는 적절한 제도적 절차를 거친 공평한 법의 적용을 통해서만 형벌에 담겨 있는 한 사회의 도덕적 가치들을 유지시킬 수 있다.

정녕 조선후기 사회는 올바른 도덕성과 이에 기초한 정의로운 법률의 신중한 적용으로 사회질서를 다잡아야 했다. 그런데 지나치게 만인의 도덕성 회복만을 강조하고 말았다. 개인의 도덕성에 의존하여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제도적 강제를 최소화하려던 유교 통치의 궁극의 운명일지도 모른다.

물론 사회 구성원 전체를 도덕적으로 교화함으로써 법 없는 세상을 만들려던 조선 후기의 의지는 그 뜻대로 대부분의 사람들을 법 없이도 살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위법과 불법을 자행하면서 전혀 양심의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파렴치한들 또한 양산한 것이 사실이다. 현재 국민들 앞에 서 있는 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김호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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