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 양국이 북중 정상회담 4일 뒤인 31일 각각 북한을 향해 내놓은 두 갈래 조치는 한반도를 둘러싼 역학 관계가 복잡미묘하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남북한간 대립은 물론 G2로 불리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 남북한의 상황 관리 움직임과 미중의 접점 모색 등이 이들 조치에 모두 응축돼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중 정상들이 단합을 과시하자마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자금을 죄는 조치를 내놓았다.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북한을 압박해온 미국의 강력한 대북 응징 기조가 이어진 것이다. 이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 제재 대상인 노동당 39호실 등 북한 기관의 대외 활동은 사실상 중국을 경유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북한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을 경우 일관된 제재가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 것으로 중국을 향한 경고로도 볼 수 있다. 그간 미중 양국은 천안함 사태 직후 서해상 한미연합 훈련 실시 여부 등을 놓고 충돌해왔다. 세계 패권을 놓고 진행되는 두 강대국의 전략적 힘겨루기는 한반도 정세를 요동치게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나온 한국 정부의 대북 수해지원 제의는 한미간 역할 분담에 따른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양국 모두 한반도 상황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다. 천안함 사태 이후 북중간 유착을 감수해온 한국측이 남북간의 대화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31일 한미 당국의 조치는 최근 한반도 안팎에서 벌어졌던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의 방북, 북중 정상회담 등과 연관지어 해석할 필요가 있다. 관측통들은 "이러한 일련의 이벤트들은 앞으로 새로운 한반도 정세가 조성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며 "남북한과 미국, 중국 등 4자간에 본격적 게임이 개시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최근 한반도 주변의 이벤트들을 관통하는 핵심 변수는 북한 내부 사정"이라고 말했다. 9월 초 김정은 후계체제를 구축해야 하는 김정일 위원장은 중국의 협조를 얻기 위해 북중 정상회담에 나섰고, 중국은 고립무원인 북한에 지원을 약속함으로써 한반도 정세 변화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반도 문제 당사국들도 분위기 전환에 소극적이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에 대해 긍정적 언급을 하면서 한반도의 현 국면을 굳이 '냉정적 시각'으로 볼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한미와 북중이 대결하는 식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한반도 냉각 국면을 해소하고 싶은 당사국들의 욕구도 상당하다. 북한은 후계체제 완성을 위해 안정을 희구할 것이고, 한국 정부도 11월 서울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반도 주변 상황 관리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이런 욕구가 이어질 경우 6자회담 재개 문제에서 접점이 찾아질 수 있다. 일각에서는 9월 중∙하순까지 변화 모색 움직임이 이어진 뒤 현재의 한국_미국 대 중국_북한 대결 구도인 '신냉전적' 한반도 정세가 해빙 무드로 변화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이 과정에서 북한이 얼마나 발걸음을 앞으로 내딛느냐, 북한에 채찍만 써오던 미국이 당근을 제시하느냐, 한국 정부가 어떤 강도로 북한에 천안함 사태 사과를 요구하느냐, 미국과 중국이 갈등 봉합에 나서느냐 등이 핵심 변수로 등장할 것이다. 이는 4개국의 치열한 외교전을 예고한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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