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거리가 두 사람 주위를 야광충으로 수놓은 해류처럼 흘러갔다.','가을비 전선은 태평양 연안에 자리 잡은 채 움직이지 않는다. 시간을 잊고 고독한 상념에 빠진 사람처럼.', '바람이 나뭇가지 사이를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빠져 나갔다. 절망을 알게 된 사람의 잇새로 비어져 나오는 잔혹한 한숨처럼.'
보석처럼 반짝이는 비유들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비유를 찾아내는 것이다. 비유에는 사람이 겪은 삶의 모든 경험들이 동원된다. 농부는 세상을 밭갈이의 경험으로 비유하고, 대장장이는 세상을 쇠의 담금질로 비유한다. 비유의 원관념은 보조관념을 통해서 의미의 육체를 얻는다. 그 육체는 영화처럼 시각적인 것이기도 하고, 음악처럼 감정을 움직이는 기호들이기도 하고, 철학자의 책처럼 깊은 상념이기도 하다.
비유는 삶을 이해하는 아름다운 통찰이다. 글을 쓴다는 것이 결국 현실의 모습을 허구의 틀 속에서 재생시키는 것이라면 글 쓰는 작업은 곧 현실이라는 원관념에 적절한 허구의 보조관념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것이다.
하루키의 에는 수천 개의 비유들이 보석처럼 반짝거린다. 이제는 노 작가라고 불려도 될 이 작가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신의 비유를 더 넓고 깊게 완성시킨다. 커피와 재즈, 유럽 소설 속의 인물들이 비유의 보조관념으로 등장할 때는 비유는 도시적이지만, 혼수상태인 아버지의 뇌 속을 아무도 살지 않고 가구마저 실려나간 빈 집으로 묘사할 때 그의 비유는 고독하다.
그의 비유는 스스로 파악한 일상의 비밀들을 독자들에게 하나하나 해독해 주는 암호이자,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의 긴장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또 다른 세상이다. 글을 쓰고 싶다면 지금 당장 창 밖에 내리는 비를 무엇인가로 비유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겪은 상처들의 총합이다. 소설의 남자 주인공 덴고는 어린 시절 방송사 시청료 징수원인 아버지를 따라 시청료를 받으러 다녔다. 여자 주인공 아오마메는 부모들에 의해 어린 일상을 종교적 계율에 구속시켰다. 둘 다는 이른 독립이라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상처에 응전(應戰)한다. 그 상처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그 후 두 사람의 자아를 형성시킨다. 소설 속의 다른 인물들도 마찬가지이다. 우시카와는 못생긴 외모에 의한 상처들로 성장하고, 소도시의 간호사는 사랑의 상처로 오히려 따뜻한 심성을 갖게 된다. 모든 인물들에 작가가 상세한 주석처럼 붙인 어린 시절의 상처들은 성인이 된 인물들을 마치 단정하게 잘라진 두부 조각처럼 다른 조각들로부터 구별해낸다. 중요한 건 상처를 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로부터 어떻게 스스로를 빚어내느냐는 것이다.
고독은 선(善)이다. 사람은 고독하다는 작가의 믿음은 이번 소설에서는 더욱 더 확고해진다. 소설 속 모든 인물들은 거의 혼자 자고, 혼자 책을 읽고, 혼자 요리해서 밥을 먹는다. 소설의 많은 부분은 이렇게 섬처럼 혼자 사는 인물들의 묘사로 채워져 있다. 고독은 예외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숙명이다. 고독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따뜻하고 담담하다.
사랑에 이르는 남녀의 고독
사람이 할 수 있는 생산적인 일의 대부분은 혼자 하는 것이다. 독서, 음악, 생각, 공부. 그래서 소설 속에서 인물들의 고독한 순간들은 아름답게 보인다. 이 소설은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에는 사랑에 이르게 되는 두 남녀의 고독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랑이 두 사람 간의 완전하거나, 혹은 아주 강렬한 소통이라면 고독한 인물들일수록 그 사랑의 가능성은 커지는 셈이다. 그러니 고독이 사랑의 재료가 아니라 사랑이 고독의 재료인 셈이다. 고독했기에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가능성이 있기에 충분히 그리고 기꺼이 고독할 수 있는 것이다.
육상효 인하대 교수·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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