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처음 전파를 탄 TV홈쇼핑 업계는 케이블TV 가입자 수의 증가와 소비 패턴의 변화, 택배산업의 발달 등에 힘입어 성장 가도를 달려 왔다. 하지만 한편에선 정부가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에게 공공재인 전파의 독점적 사용권을 사실상 보장함으로써 대기업 위주 5개 홈쇼핑사의 독과점체제 구축을 불러왔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특히 최근 들어 이들 홈쇼핑 업체들이 판로 확보가 절박한 중소 기업들을 상대로 ‘불공정’거래를 통해 과도한 이익 챙기기 경쟁에 나서면서 비판의 목소리는 한층 커지고 있다. 조만간 본격화할 중소기업 전용 홈쇼핑채널 사업자 선정을 비롯, 홈쇼핑시장의 새 판 짜기가 필요한 이유다.
현재 국내 TV홈쇼핑시장은 농수산홈쇼핑을 제외한 GS홈쇼핑과 CJ오쇼핑, 현대홈쇼핑, 롯데홈쇼핑 등 4개사가 시장의 90% 가량을 점하고 있다. 사실상의 대기업 독과점 체제다. 게다가 다른 유통산업에 비해 수익성이 훨씬 높다. 금융위기의 한파가 몰아쳤던 2008년을 기준으로 5개사 중 가장 낮은 영업이익율 조차 13.7%(GS홈쇼핑)였을 정도다. 같은 기간 홈플러스의 영업이익율(4.1%)을 3배 이상 넘는 수치다.
그런데 이들 5개사는 독과점 체제를 제도적으로 보장받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승인’ 없이는 시장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에게 공공재인 전파를 사실상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남서울대 최재섭 교수는 “공급량(방송시간)이 고정된 상황에서 중소기업들의 방송 수요가 늘어날수록 가격(판매수수료)만 인상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비용 부담 때문에 자체 영업망을 갖추기 어려운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판로 확보 차원에서 홈쇼핑의 문을 두드리지만 우월적 지위에 있는 홈쇼핑업체와 동등한 거래관계를 유지하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홈쇼핑사업자에 대한 등록제 도입 등 진입 규제 완화를 주장한다. 경쟁체제를 통해 대기업 계열사들의 독과점 체제를 해소하자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 케이블TV의 채널 편성권을 보유한 SO(종합유선방송사업자)의 송출수수료에 대한 적정한 규제가 필요하다. 한국유통학회는 5개 홈쇼핑사 모두 SO업체들과 수직ㆍ수평계열화를 강화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진입 규제가 풀렸을 경우 후발업체들의 일차적인 부담은 송출수수료가 될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TV홈쇼핑업체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제재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도 절실하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매년 유통업계 현황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지만, “기대를 저버린 지 오래”(한 이미용기기 제조업체 관계자)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실제로 지금껏 거래상 지위 남용에 대한 제재 건수는 5건에 불과하다. 사업자 승인 및 재승인 권한을 가진 방통위 역시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만을 남발했을 뿐이다. 민주당 박선숙 의원이 거래 유형별 불공정행위를 구체화하고 처벌규정을 담은 납품거래공정화법 제정안을 제출한 것도, 최 교수가 “승인 및 재승인 심사 과정에 불공정행위 여부를 반영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소기업 전용채널 신설에 대한 요구도 높다. 적정 수준의 판매수수료로 중소기업의 부담을 덜고, 브랜드 파워가 약하거나 신규 진입하는 중소기업에 대한 인큐베이팅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공성 강한 채널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기도 하다. 공정위는 5월 방통위측에 중소기업 전용채널 신설을 제안한 상태다.
하지만 중소기업 전용채널 문제는 정부와 업계 모두에게 ‘뜨거운 감자’다. 우선 기존 홈쇼핑업계의 반발이 상당하다. 한 홈쇼핑업체 관계자는 “홈쇼핑시장이 포화상태인 점, 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품을 내놓았을 경우의 시장 혼란, 특정사업자를 염두에 둔 특혜 시비 등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방통위 관계자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홈쇼핑업계의 억지일 뿐”이라고 일축했지만, 정부가 이 같은 비판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많다. 실제로 중소기업 전용채널로 출발한 39쇼핑과 우리홈쇼핑이 CJ그룹과 롯데그룹에 편입되는 동안 정부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정부가 중소기업 채널 사업자의 경우 공공기관 등이 과반이 넘는 지분을 확보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비판을 의식해서다.
김소연기자 jollylife.co.kr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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