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현지시간) 오후 8시 가장 많은 시청자가 TV 앞에 모여드는 프라임 시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집무실(오벌 오피스)에서 갖는 취임 후 두 번째 대국민 연설을 통해 미군의 이라크 전투임무 종료를 공식 선언한다. 2003년 개전 이후 4,400여명의 장병을 잃었지만, 사담 후세인 정부 괴멸 이외엔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7년 넘게 허우적대던 미국이 마침내 전쟁의 수렁에서 벗어나는 순간이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는 단적으로 ‘종전’을 선언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5만여 명의 미군이 내년 말까지 이라크 군의 훈련과 지원을 위해 남아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종전이라는 말을 뱉기엔 테러가 잇따르는 등 이라크의 상황이 녹록하지 않아서다. AP통신은 이날 보도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이라크 전투병력철수 연설문에서 ‘임무 완수(Mission accomplished)’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30일 “임무 완수라는 말을 우리에게서 들을 수 없을 것”이라며 “연설에 앞서 대통령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전화로 (연설내용과 관련된)이야기를 나눌 것”이라고 밝혔다. AP는 사실상 전쟁의 마침표가 찍히는 역사적인 순간임에도 오바마 대통령이 표현에 신중한 것은 “2003년 4월 부시 대통령이 종전을 의미하는 ‘임무 완수’라는 문구를 TV에 노출시킨 채 항모에서 전투종료를 선언했지만, 이후 전쟁은 7년이나 이어져 지지율이 급락했던 사례 때문이다”고 해석했다. 조 바이든 부통령도 30일 바그다드를 방문해 “미국은 이라크를 버리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이라크 정부에 전하는 등 오바마의 연설이 잘못 읽히는 일이 없도록 하는 데 주력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승리를 자축하는 듯한 연설은 자제할 것으로 보인다. 대신 “이제 아프간 전쟁에 집중한다” “이라크에서 희생된 미군의 정신을 높이 기린다”등 미군의 각오를 다지고 희생자에 경의를 표하는 데 주력하리라고 AFP통신은 보도했다. 또한 정부구성이 늦어져 치안불안이 이어지는 이라크의 상황에 대한 안심의 메시지도 덧붙여질 전망이다. 이와 관련, 오바마 대통령은 29일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성숙하지 못한 민주주의 단계에선 정부구성 지체와 같은 어려움은 흔하다”며 “그들이 잘 이겨낼 것이라 자신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선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과, 어쨌든 ‘종전선언’으로 읽히게 될 움직임들이 설익은 판단에 따른 것이란 비판이 쏟아진다. 31일자 워싱턴포스트는 ‘오바마의 연설은 위험하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승리를 선언하는 것 같은 연설을 하기엔 시기가 무르익지 않았다”며 “이라크군 홀로 치안을 유지하는 데 실패한다면 미 정부는 정치적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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