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시 대피공간도, 테러방지용 화단도 없다. 축구장 160개 면적에 방화관리자는 고작 2명뿐.'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의 재난 대비 현주소다. 불법시위 근절, 불법외국인노동자 단속, 거리정비 사업 등 G20 관련 대책은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회의장소인 코엑스는 재난 및 테러 대비가 매우 부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소방방재청(이하 소방청)의 연구용역을 받은 박형주 경원대 전기소방공학부 교수는 지난해 3월부터 올 3월까지 현장조사(3회)와 실무자회의(6회) 등을 거쳐 코엑스를 샅샅이 살펴본 뒤, 30일 '초고층ㆍ복합건축물 밀집지역 대규모 피해 확산방지 및 경감모델 개발'이란 보고서를 제출했다.
박 교수는 보고서에서 아셈타워, 트레이드타워, 코엑스인터컨티넨탈호텔 등 주요 대형건물이 지하로 연결돼 불이 나면 대형참사가 우려되는데도 피해를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는 법적 기준조차 미흡하다고 밝혔다. 그는 "코엑스는 지하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각 건물을 연결하는 환풍구를 통해 연기가 급속히 퍼지는 구조지만 피난시설은 고사하고 전담조직과 매뉴얼조차 턱없이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무엇보다 코엑스의 대표적 고층건물인 아셈타워(41층)와 트레이드타워(54층)는 대피안전층이 없다. 불이 나면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해야 하는데, 30층 이상에 있는 노약자와 임산부 등이 연기와 고열을 피해 임시로 피할 장소가 없다는 것이다. 2000년 문을 연 아셈타워보다 4년 앞서 준공한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쌍둥이빌딩(88층)은 40~43층에 안전구역을 두는 등 다른 나라의 고층건물은 대피안전층이 마련돼 있다.
박 교수는 또 "조사결과 코엑스에는 방화관리자가 2명에 불과하다"며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코엑스 규모(연면적 121만여㎡)라면 30명 이상의 전담조직을 운영하도록 법적으로 규정한다"고 설명했다.
전담조직은 비상시 신속하고 정확한 초기대응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폐쇄회로TV 화면을 보면서 각 층마다 음성으로 대피방법을 알리려면 평상시 다양한 시나리오에 따라 훈련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속건물을 포함해 대형건물 10개 정도가 지하로 연결된 코엑스는 유기적인 훈련이 더욱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러나 아셈타워와 트레이드타워는 층별로 대피요령을 전달하는 육성경보시스템조차 갖춰져 있지 않았다.
테러에도 취약한 것으로 지적됐다. 건물에 테러 방지시설을 설치하는 선진국과 달리 아셈타워와 트레이드타워는 차량 폭탄테러를 막아주는 차량 접근차단용 화단이나 폭발 충격을 막아주는 외벽 등이 없다. 코엑스 관계자는 "건물마다 소유자가 다른 복합건축물이라 재난대비를 위한 전담조직을 운영하는 등의 통합관리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다만 현행기준에 맞게 운영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관련 법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미비하다. 건물 내 방재센터의 위치와 규모, 육성경보시스템, 피난계단 내 양방향 통신설비 구비 등에 대한 규정이 없어 관계기관이 재난대비시설 설치를 강요할 수도 없다. 대피 안전구역을 30층마다 설치하도록 하는 조항은 지난해 겨우 건축법 시행령에 반영됐다.
권영진 호서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코엑스처럼 지하연계 복합건축물의 재난관리에 관한 법 규정은 전무한 상태라 지금이라도 면밀한 검토와 각종 실험 및 선진국 사례 분석 등을 통해 과학적 기준이 담긴 특별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방청 관계자도 "지난해 3월 '초고층 및 지하연계 복합건축물 재난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에 상정됐지만 아직 계류 중"이라고 밝혔다.
박 교수는 "후진적인 현행 법규정만 핑계 삼을 게 아니라 당장이라도 코엑스 주요건물의 30층마다 임시로라도 대피공간을 만들고, 방호용 화단을 조성해야 미연의 사태를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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