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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재래시장에 간 젊은 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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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재래시장에 간 젊은 작가들

입력
2010.08.3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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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에 문 닫는 점포가 늘고 있다. 문을 연 가게들도 하루 종일 파리만 날리기 일쑤다. 쇠락해 가는 시장의 빈 점포에 언제부터인가 돈 없는 젊은 작가들이 입주하기 시작했다. 헐값 월세를 내고 작가들이 모여들자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재래시장의 나이 많은 상인과 젊은 예술가가 만나 상생을 모색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안양 석수 시장, 마산 부림 시장, 광주 대인 시장, 수원 목골 시장 등에서 젊은 작가들이 상인들과 함께 재래시장 활성화 작업에 나서고 있다.

2009년, 지방의 한 예술시장 프로젝트에 작가로 참여해 3개월간 작업했던 것은 예술과 현실을 결합해 보는 값진 경험이었다. 문 닫은 점포들을 빌려 작업실을 만들고 어지러운 좌판과 생선 비린내가 진동하는 시장 곳곳을 문화지대로 바꾸었다. 볼 만한 것들이 있으면 유동인구가 많아지고 자연히 상가의 매출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예술이 현실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것을 넘어 문제를 직접 해결해 보겠다고 나선 것은 신선한 도전이었다.

작가들과 기획팀은 시장 통의 1,000원짜리 국수집에 모여 전성기 재래시장의 명예를 되찾고 사람들로 복작거리는 장터를 만들 기발한 의견을 나누었다. 상점마다 특색을 살린 간판도 새로 만들고 낡은 벽과 셔터에 그림을 그렸다. 영화 (1968)의 포스터를 패러디해 주인공 문희, 신영균 얼굴 대신 닭 가게 상인 아주머니들 얼굴로 바꿔 넣은 '함평 통닭' 집 간판은 큰 인기를 누렸다.

국밥집 옆에 추억의 옛날 사진관을 만들어 시장 상인들에게 흑백 가족사진을 찍어주고 판소리와 민요를 가르치는 문화 사랑방도 열었다. 주말마다 약국 앞 사거리에서 열리는 퓨전 음악 공연과 몇 천 원짜리 예술 상품을 만들어 파는 아트 마켓은 젊은이들을 재래시장으로 불러들였다.

화가로 데뷔한 상인도 있었다. 광주 대인 시장에서 생닭 집을 하는 곽일님(64세) 아주머니는 작년에 우연히 피오피(POP) 손 글씨를 배우다가 남은 물감이 아까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졸업한 뒤 공부라고는 하나도 안 해봤다는 아주머니는 자신을 스스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인정하며 살아왔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평생 다루어 온 친숙한 닭을 그렸다. 원색의 닭 그림은 틀에 박히지 않은 자유로움과 생동감이 넘쳤다. 솜씨를 알아본 작가들이 액자를 지원하고 시장 안에 만든 갤러리에 개인전을 마련했다. '화가가 된 사장님 전(展)'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이후로 주변 상인들이 곽 작가님으로 부르는 바람에 아주머니는 지금도 민망스럽다.

계층별 소비 양극화로 청담동 덴마크 최고급 가전 브랜드 지점에서는 5,000만원 대 TV를 없어서 못 파는 마당에 재래시장의 노인들은 하루 종일 돈 3,000원 버는 것이 현실이다. 현실이 이런데 예술을 통해 재래시장을 살려보겠다고 나선 젊은 작가들의 의욕이 무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장사도 안 되는데 젊은 사람들이 속 시끄럽게 왔다 갔다 한다"던 몇몇 상인들의 푸념 소리가 귓가에 쟁쟁하다. 작가들보다 상인들을 더 입주시키고 상품 경쟁력을 갖추어야지 예술이 무슨 시장을 살리겠느냐는 상인들의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젊은 작가들에 의해 굳게 닫혀 버린 점포의 녹슨 셔터가 다시 올라가고 발길이 끊긴 흉물스런 가게에 환한 불이 켜질 때마다 상인들의 얼굴에 감동과 희망이 되살아났던 것을 잊을 수 없다. 감동을 주는 것이 예술의 본분이라면 비록 현실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도 지금 재래시장에 자생하고 있는 '시장 예술'만큼 우리 시대의 진실하고 감동적인 예술도 없다.

전강옥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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