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이드 러너’(1982)는 1980년대를 대표하는 공상과학 영화의 고전으로 꼽힌다. ‘글래디에이터’로 한국 대중에도 이름을 널리 알린 리들리 스콧 감독이 “내 영화 중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자부하는 작품이다.
‘블레이드 러너’의 시작은 신통치 않았다. 어두운 결말이 마음에 걸린 스튜디오가 스콧 감독의 의견을 배제한 편집본으로 개봉을 강행했으나 흥행에서 쓴맛을 봤다. 그러나 종영 뒤 비디오를 통해 입 소문을 얻으면서 재평가 받았다. 애매하게 처리된 결말 때문에 복제인간을 쫓는 형사 덱커드(해리슨 포드)도 과연 복제인간이냐를 두고 마니아들 사이에 뜨거운 설전이 벌어졌다. 1991년 스콧 감독이 덱커드의 복제인간 가능성에 무게를 둔 감독판을 내놓으면서 논쟁은 일단락됐다. 뒤늦게나마 진정한 자신의 영화를 되찾고 거장의 칭호도 얻게 된 스콧 감독은 행복한 축에 속한다.
‘스팔타커스’(1960)는 명장 스탠리 큐브릭(1928~1998)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정작 큐브릭은 자신의 영화로 인정하지 않았다. 제작자 겸 주연이었던 커크 더글러스가 지나치게 간섭해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한 영화가 되었다는 이유에서다. ‘스팔타커스’ 제작 과정에서 크게 낙담한 큐브릭은 모국인 영국으로 돌아가 자신의 연출 전권이 보장된 영화만을 만들었다. 감독판을 꿈꿀 수조차 없었던 ‘스팔타커스’에 한해 큐브릭은 불행한 감독이었던 셈이다.
대중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또는 상영시간을 조절하기 위해 감독들은 종종 편집 과정에서 살점을 떼내는 듯한 경험을 한다. 영화가 대중적으로 성공해도 감독들이 못내 아쉬워 감독판을 따로 개봉하거나 DVD 등을 통해 새로 편집된 내용을 소개하는 이유다.
3D 열풍으로 지구촌을 뒤흔든 역대 최고 흥행작 ‘아바타’가 ‘아바타: 스페셜 에디션’으로 지난주 극장가를 다시 찾았다. 8분의 영상을 추가한 새로운 버전이라지만 일반적인 감독판과는 거리가 멀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예술적 자의식이 두드러지지도 않고, 해석을 달리할만한 내용이 더해지지도 않았다. 단지 시간에 쫓겨 촬영 못한 부분을 찍어서 추가한 것뿐이란다.
‘아바타’는 눈이 번쩍 뜨일 창의성으로 빛나는 예술품이라기보다 고급 승용차를 연상케 하는 상업영화다. ‘아바타: 스페셜 에디션’은 돈을 따로 받는 전자제품 애프터 서비스나 자동차 리콜처럼 느껴진다. 당연하게도 개봉 1년이 채 안돼 다시 돈벌이에 나선 상혼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돈을 앞줄에 놓는 카메론의 영화관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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