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정(反正)을 통해 왕위에 오른 세조(1417~1468)의 왕권 강화책이 절정에 이르던 조선 초(1460년대) 어느 겨울. 한밭(대전) 인근에 살던 ‘학봉장군’ 송효상은 42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원인은 평생을 앓아왔던 기관지확장증. 피를 토하던 일이 잦던 그는 각혈을 치료하기 위해 ‘포황(애기부들 꽃가루)’를 달여 먹어왔지만 결국 병을 떨쳐내지 못했다.
그의 부인 역시 랩토스피라병(풀밭 등에서 쥐로부터 옮겨진 박테리아가 사람에게 감염돼 걸리는 병)과 디스토마를 앓고 있었다. 민물고기를 날로 간장에 찍어 먹던 것이 사대부 집안을 포함한 일반적인 식(食)풍습이었다. 그 역시 건강한 생활을 하지는 못했다. 학봉장군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부인 또한 눈을 감았다. 추정 나이 53세. 소나무, 참나무, 팽나무 등 우거진 수풀과 국화 등 꽃이 만발하던 곳을 함께 거닐며 희로애락했던 추억을 뒤로 한 채, 167.7㎝의 키에 희끗한 턱수염과 콧수염을 기른 남편의 품으로 돌아갔다. 자식들은 아버지의 무덤에 어머니를 합장(合葬)했다.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부부 미라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정광호씨는 2004년 당시 부부 미라로 발견돼 세간의 주목을 받은 학봉장군 부부의 사망연령과 연도, 원인과 생활양식, 생존 시 질환 등이 담긴 ‘학봉장군 부부 미라의 고병리학적 분석’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30일 발표했다.
정씨는 지난 2년간 X선과 MRI(자기공명영상촬영)는 물론 내시경, 화분(花粉)검사, 방사성 탄소연대측정법, 치아 분석 등 다채로운 방법으로 이들 부부를 연구했다. 수백 년의 풍파를 견뎌낸 치아를 3차원 사진으로 분석해 사망 당시의 연령을 밝혀냈으며, 탄소연대측정과 족보 분석을 통해선 사망 연도를 도출해냈다.
논문의 성과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은 부부의 장기에서 간흡충란과 편충란 등 간디스토마 기생충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주로 민물고기 회를 통해 감염되는 기생충으로 그 동안 학계에서 제기돼 온 ‘우리 조상들이 언제부터 디스토마 질병을 앓기 시작했는가’라는 궁금증을 푸는 중요한 열쇠라는 게 정씨의 설명이다. 정씨의 논문을 지도하며 학봉장군 부부 미라를 지속적으로 연구해 온 김한겸 고려대 의과대학 병리학교실 교수는 “‘피를 토하며 죽었다’는 등의 과거 기록을 보고 학계에서는 결핵으로 추정을 하는데 한국에서 결핵이 언제 시작이 됐는지에 대한 연구가 없다. 오히려 간디스토마에서 전이된 폐디스토마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연구 결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이들 부부의 장기에는 또한 육류와 채소류가 고루 남아 있어 사대부 집안답게 육식과 채식 등 고른 식사를 해온 것으로 추정됐다. 세계에서 유례없는 기관지 내시경 검사에서는 소나무와 국화 등 다양한 꽃가루가 검출되기도 했다. 정씨는 “기관지 내시경 검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미라의 상태가 양호했다. 앞으로 고대 영양학 등 관련 분야 연구가 발전되면 중요한 정보를 추가로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기대했다.
2004년 대전 중구 송절마을 뒷산에서 발견된 이 부부 미라 중 남편은 현재 대전보건대학 계룡산자연사박물관에 전시돼 있으며, 부인은 고대구로병원이 연구목적으로 보관하고 있다. ‘학봉장군’이란 호칭은 박물관이 위치한 ‘학봉(鶴峯)’의 이름을 따 붙였으며, 미라의 당사자가 장군인지 여부는 확인돼지 않았지만 그의 3대 후손이 수군절도사를 지내 이 같은 호칭이 붙게 됐다고 한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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