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효환(43) 시인의 시는 복작이는 일상에서 벗어난 공간에서 쓰여지는 것이 많다. 국내 외딴 마을부터 유럽과 미국, 남미, 러시아에 이르는 너른 땅을 무대로 삼았던 첫 시집 (2006)가 그랬고, 4년 만에 낸 두번째 시집 (문학과지성사 발행)도 그렇다. 특히 이번 시집엔 중국 만리장성 일대와 몽골 고비사막에 관한 연작시편을 비롯, 북방을 무대로 한 시가 많다. 곽씨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도 이용악, 김동환, 백석의 근대 ‘북방시’였다.
‘혹독한 계절을 타고 풀과 물을 따라 유목하는/ 길 위의 사람들에게 아득한 시절의 내가 있다/ 말을 타고 건넌 초원과 사막과 호수와 강의 기억들/…/ 북방 대륙을 가로질러온/ 나를 닮은 검은 얼굴들이 있다// 가없는 대륙에 맨 처음 길을 연/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들’(‘나를 닮은 얼굴들’에서). 그에게 북방은 자기 존재의 근원을 탐문하는 공간이다. 그 탐문은 국경, 인종 등의 구별짓기에 얽매이지 않고 조화로운 공존의 땅으로서 북방이 지닌 가능성을 보여준다. 중국의 동북공정 현장에서 그가 전하는 날선 비판도 민족주의의 발로와는 거리가 멀다. ‘만리장성 한 줄기가 일행을 보고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허물어지고 팬 상처를 고스란히 보이며 이쪽에서 저쪽까지 가없이 늘어선 만리장성의 민얼굴이 바로 진실하고 겸손한 역사의 모습이라고’(‘고북구장성에 오르다-열하기행 8’에서).
산문성 강했던 첫 시집에 비해 시어가 한결 농밀해진 이번 시집에서 그는 일상과 내면에 더 자주 시선을 둔다. 퇴락한 고향 마을을 찾은 그는 문 닫은 지 오래인 구멍가게에 들어갔다가 외상장부 역할을 하던 낡은 칠판에서 자신의 이름을 발견한다. ‘곽효환/ 연탄 두 장 막걸리 세 병/ 꼭 하나뿐이던 내 이름,/ 수십 가구 작은 마을에/ 연탄 두 장 막걸리 세 병으로 존재하네// 그것이 허세 없는 내 이름값이려니’(‘연탄 두 장 막걸리 세 병’에서).
이훈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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