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전격적 중국 방문으로 더욱 밀착된 북중관계를 확인한 미 행정부의 속내는 복잡하다. 더욱이 김 위원장이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을 보란 듯이 외면하고 중국행을 택해 미 행정부에서는 당혹해 하는 분위기마저 읽힌다. 사실 미국은 카터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면담을 통해 천안함 국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초가 도출되기를 기대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미 행정부 내에서는 현재의 제재 일변도 대북기조에 한계가 있다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카터 전 대통령에 대한 북한의 '의도적 홀대'만 확인한 상황에서 미국이 주도적으로 변신을 꾀할 여지는 크지 않다는 게 미국내 기류다.
이는 북중-한미 간 대결구도가 당분간 해소되기 힘들다는 것이어서 향후 특별한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는 한 6자회담 재개 등 출구전략 이행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다만 미 행정부 내에서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지금의 대북기조를 바꿔야 한다는 유연한 입장이 흘러나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미 국무부는 힐러리 클린턴 장관의 지시로 이달 초 비밀리에 대북정책 평가회의를 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회의에는 대북정책을 관장하는 기존 라인 외에 외부 전문가도 같은 비중을 갖고 참석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타임스는 "대북정책에 관한 '신선한 노력'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압박만으로는 북한을 움직일 수 없다는데 참석자들 대부분이 동감했다"고 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현 대북기조에 "초조감"을 드러낸 인사는 클린턴 장관이었다.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도 '신선한' 대응을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의가 정책적 결정을 끌어내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대북 강경파들조차 '대화 없는 압박'만으로는 북한의 호전적 태도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이 회의에서 일부 인사는 김 위원장의 건강악화와 권력승계 시기라는 미묘한 정세를 거론하며 미국이 대립각을 높이는 것은 북한과의 "미래의 접촉기회"마저 닫아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압박에 따른 전쟁 발발 가능성도 제기됐다.
관건은 여전히 6자회담의 형식과 의제이다. 뉴욕타임스는 "6자회담 형식에 열의를 갖고 있는 전문가들은 거의 없다"면서 "회담이 유용성을 갖는 것은 한국과 일본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다룰 대화틀로 6자회담 이외의 방안을 고려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현재로선 북한이 비핵화를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한 타협은 어렵다는 미국의 입장은 확고해 보이지만 북한의 비핵화 행동 수위를 어떤 수준으로 낮추느냐를 놓고 한미의 강온파간 내부 논쟁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황유석특파원 aquariu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