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서니 루이스 지음ㆍ박지웅 등 옮김
간장 발행ㆍ288쪽ㆍ 1만4,000원
미국 우파들은 곧잘 오바마 대통령을 '사회주의자'로 비난하며 악당 조커나 심지어 악마로 묘사하곤 하지만, 그 때문에 누가 명예훼손으로 조사를 받거나 붙잡혀갔다는 얘기는 없다. 공직자들이 툭하면 언론 보도나 블로그, 인터넷 댓글 등을 명예훼손이라며 문제 삼는 국내 정치 상황과는 많이 다르다.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우리 헌법은 언론의 자유를 말하면서도 '언론 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해서는 안된다'고 명시한 반면, 미국 수정헌법 1조는 '의회는 의사표현이나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그 어떤 법도 만들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미국이 정부나 공직자들에 대해 거침없이 말할 수 있는 나라가 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퓰리처상을 두 차례 수상한 저명 언론인 앤서니 루이스가 쓴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 (간장 발행)는 바로 이 자유의 원천인 미국 수정헌법 1조에 대한 얘기다. 물론 수정헌법 1조가 연방헌법에 추가된 1791년부터 자유가 불쑥 시민 손에 떨어진 것은 아니다. 이 조항의 의미를 둘러싼 수많은 논란 속에서 표현의 자유를 확장하려는 법조인들과 시민들의 의지가 일궈낸 성과였다는 것이 저자의 메시지다. 책은 역사적 판례를 통해서 수정헌법 1조의 의미 변천사를 훑고 있다. 우리가>
수정헌법 1조는 초창기에는 '정부로부터 사전 규제를 받지 않는다'는 의미로만 해석돼 반 쪽짜리 자유에 불과했다. 표현 사후에는 처벌될 수 있다는 것으로, 처벌 기준도 모호했다. 이런 상황에서 첫 이정표를 세운 이가 올리버 웬델 홈즈 대법관.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간첩법'을 만들어 정부에 비판적인 의견을 내는 이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일 때, 그가 제시한 유명한 기준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다.
그는 이후 '임박한'이란 개념도 추가했는데 이는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는 미국 사법부의 중요한 척도가 됐다. 연방대법원은 심지어 1969년 불법과 폭력을 옹호한 KKK단 사건에서 '임박한 위험이 없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뒤집었다. 수정헌법 1조의 자유는 '우리가 혐오하는 생각에 대해서도 인정하는 자유'가 된 것이다.
이 자유를 더욱 확장시킨 기념비적인 일은 1964년 '뉴욕타임스 대 설리반 사건' 판결이었다. 전통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옥죄는 가장 큰 굴레가 명예훼손인데, 이 부담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앨라배마 경찰서장 설리반이 뉴욕타임스를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연방 대법원은 공직자의 경우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한 원고가 상대방의 현실적인 악의를 입증하도록 한 것이다. 즉 잘못된 보도이더라도 상대가 악의를 가지고 잘못 보도를 했다는 것을 공직자인 원고 스스로가 입증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당시 브레넌 대법관은 판결문에서 "공적 사안에 관한 토론은 금지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 거기에는 정부와 공직자들에 대한 맹렬하고 신랄한, 때로는 불쾌하리만큼 날카로운 공격이 포함될 수 있다는 원칙이 그것이다"라고 적시했다. 한국의 현 상황에 던지는 함의가 적지않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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