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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마취제

입력
2010.08.27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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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개하거나 소작할 때 매우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한 컵 사용하면 잠에 취해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외과의사였던 디오스코리데스는 1세기경 가지과(科) 식물인 맨드레이크의 진통효과를 이렇게 기술했다. 이 식물은 갈라진 뿌리가 풍만한 여성의 하반신 모양이어서 기원전부터 최음제나 다산(多産)을 돕는 약으로 쓰였다. 로마시대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는 죄수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맨드레이크에서 추출한 성분을 술에 타서 마시게 했다는 기록도 있다.

■ 고대 의사들은 수술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양귀비와 사리풀, 오디즙 등 다양한 식물을 활용했다. 술에 취해 정신을 잃게 한 뒤 수술하는 방법은 19세기 중반 과학적인 마취법이 개발되기 전까지 가장 널리 이용됐다. 디오스코리데스는 결석 환자를 절개할 때 독한 포도주 2온스를 복용시키라고 권했다. 중세에는 아편과 사리풀, 상추씨 등의 혼합물을 적신 스펀지를 환자 코에 대고 흡입하게 하는 방법이 널리 쓰였다. 하지만 무통(無痛)수술과는 거리가 멀어 수술실은 항상 환자의 고통에 찬 비명으로 가득했고, 종양 제거든 절단 수술이든 10분 내에 끝내는 의사가 유능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 최초의 과학적 전신마취제는 에테르다. 독일의 식물학자 코르두스가 1540년 독한 포도주를 증류해 처음 합성했는데, 19세기 초에야 혼수상태와 졸음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에테르를 흡입하면 감각이 무뎌지고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에 현실 도피를 꿈꾸는 젊은이들 사이에서'에테르 파티'가 유행하기도 했다. 에테르를 흡입한 사람은 얻어맞거나 넘어져도 고통을 느끼지 않는 사실에 주목한 미국의 내과의사 크로포드 롱이 1842년 에테르를 이용한 수술을 처음 시도했다.

■ 보건당국이 성형수술과 치과 진료, 수면내시경 등에 많이 사용하는 마취제 프로포폴을 마약류로 지정했다. 셋 세기 전에 잠들 만큼 효과가 빠르고 회복 과정도 부드러워'꿈의 마취약'으로 불리지만, 중독성이 강하고 치명 용량의 범위가 아주 좁아 과다 투여하면 사망 위험이 높다. 그런데도 심리적 안정과 기분전환 효과가 뛰어나 수면제나 환각제 대용으로 오ㆍ남용된다. 팝 가수 마이클 잭슨이 지난해 프로포폴 과다 사용으로 숨졌고, 국내서도 작년에만 4명이 숨졌다. 근대적 외과수술이 시작된 지 160년이 넘었지만 100% 안전한 마취방법은 아직 없다. 의식을 차단하고 고통을 없애는 마취(痲醉)제는 언제든 마약류로 전용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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