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층한층 올린 코리아 위상… 베트남 스카이라인 바꾼다
#. 2007년 3월 베트남 호치민시 건설국 공무원 30명이 금호건설이 시내 중심상업지인 1군지역에서 시공 중이던 금호아시아나플라자 현장을 찾았다. 방문 목적은 선진 시공현장 시찰. 당시 직원들은 ‘국내서 하듯, 뭐 특별할 것도 없는 데…’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펜스 하나 없이, 여기저기 널브러진 건설자재만 보아 왔던 현지 공무원들의 눈에 금호 현장은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견학 후 건설국 고위 관리는 “앞으로 금호 현장을 모델로 현장 관리와 펜스 시공을 건축 인허가 시 권고사항으로 지정하겠다”고 말했다. 3년 후인 2010년 현재, 호치민시 건설현장 어느 곳에서든 ‘금호식’공사장 펜스가 설치돼 있고, 현장관리 역시 크게 개선됐다.
국내 건설업계가 베트남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은 1966년초.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대림산업이 미국 해군시설처가 발주한 베트남 라치기아 항만 파일박기 공사를 86만7,000달러에 따낸 것이 시초다. 그 후 45년간 베트남은 150여 국내업체가 563건의 공사와 100억달러 이상의 수주고를 기록한 대표적 해외시장으로 부상했다. 숱한 초고층 랜드마크 빌딩과 사회기반시설(SOC)들을 건설하며 건설 한류의 뿌리를 심었던 베트남에서 최근 들어 한국 업체들이 단순한 시공을 넘어 새로운 건설 문화와 제도, 개발 기법까지 전수하며 건설 한류의 제2막을 열어가고 있다.
베트남 건설 제도를 새로 쓰다
지난달 26일 호치민 탄손낫 국제공항에서 나와 호치민시 동북쪽 수안히엡 지역으로 향하는 길에 인접한 왕복6~12차로의 도로건설 현장. GS건설이 시공 중인 이 현장은 현재 90% 가량 보상이 완료된 가운데 올 초부터 본격적 공사가 이뤄지고 있었다. 겉보기엔 여느 도로현장과 다를 바 없지만, 안을 뜯어보니 다른 현장과는 매우 다르다. 돈을 받지 않고 공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상 시공도 아니다. 탄손낫 공항부터 수안히엡까지 연결되는 13.6㎞의 도로를 깔아주고, 시정부로부터 공사비 대신 호치민시 주변 땅 102만㎡(약 30만평)를 받아 개발사업을 하기로 한 것. 이른바 BT사업(Build-Transferㆍ민간투자사업)이다. 도심 외국인 전용주거단지인 2군 뉴엔반후옹 지역에서 GS건설이 한창 시공 중인 한국형 주상복합 ‘리버뷰’(258가구)도 BT사업에 따라 이뤄지고 있는 사업지 가운데 하나.
2007년 GS건설은 당시 베트남에선 생소하기 그지없던 이런 ‘황당한’ BT사업안을 호치민시 정부에 건의를 했고, 시정부는 흔쾌히 승인했다. SOC사업 예산이 충분치 않은 시정부로서 크게 손해 볼일도 아니었기 때문.
박봉서 GS건설 베트남 영업담당 상무는 “베트남에도 BT사업과 관련된 법령이 있긴 했지만 실제 적용사례도 없었고, 또 적용하기에도 너무나 미비된 점이 많았다”며 “GS건설이 제시한 BT사업이 이뤄지면서 정부당국도 관련법을 다시 보게 됐고, GS건설의 사업 모델을 기준으로 BT관련 법령도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춰나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스카이라인과 지도를 바꾸다
호치민시 최고 중심상업지로 꼽히는 1군 지역에 들어서니, 인파로 북적이는 한 고층 건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지난해 9월 준공한 금호아시아나플라자다. 호텔, 오피스, 아파트 3개동으로 이뤄진 32층짜리 이 복합건물은 현재 젊은 세대는 물론, 비즈니스맨들 사이에서도 호치민 최대 명소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바로 옆으로는 금호건설이 또 하나의 랜드마크 빌딩을 건설 중이다. 아파트와 호텔 복합단지로 개발중인 ‘베트남 타임스퀘어 현장’. 아직 기초공사 단계 수준이라 건물 위상을 짐작하기 어려웠지만, 입지(1군)나 규모(36층) 등에서는 손색이 없다.
고개를 길 건너편으로 돌리니 호치민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올라가고 있다. 공항에서 호치민시 도심으로 진입하는 동안 멀리서부터 우뚝 솟아 눈길을 끌었던 건물인데, 다름아닌 현대건설이 골조공사를 하고 있는 68층짜리 ‘비텍스코 파이낸셜센터’다. 10월 준공 예정인 이 건물은 완공되면 베트남 최고 마천루로 등극한다. 그러나 내년 8월이면 수도 하노이에서 경남기업이 짓는 72층짜리 ‘랜드마크타워’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스카이라인을 바꾸고 있는 것은 모두 한국 건설사가 지은 건물인 셈이다.
현지에서 건설마감재 및 설비업체를 운영하는 티나 후옹후아씨는 “베트남에선 한국 건설업체가 초고층 건물이나 랜드마크 건축물들을 독식하다시피 지어서 그런지, 인지도와 평판도 한국 배우 못지않을 정도로 좋은 편”이라며 “땅 위 베트남의 모습을 가장 많이 바꾼 곳도 한국 건설업체일 것”이라고 말했다.
호치민시 도심 주상복합인 ‘선라이즈시티’1ㆍ2차(총 1,384가구)를 시공 중인 금호건설 박용웅 현장소장(상무)은 “최근 수주 물량들은 앞선 시공사례를 직접 확인한 발주처들이 잇따라 수의계약을 원해 이뤄진 것들”이라며 “앞으로는 민간사업뿐 아니라 항만 플랜트 도로 등 관급공渶慣沮?수주무대를 넓혀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호치민(베트남)=전태훤기자 besame@hk.co.kr
■ 인터뷰] 신남식 코트라 비즈니스 센터장
"베트남은 연 6%가 넘는 높은 경제성장률에서 보듯 발전 잠재성이 큰 시장인 동시에 숨겨진 리스크 또한 만만찮은 시장입니다."
신남식(사진) 코트라 베트남 주재 비즈니스센터장은 "베트남은 개발도상국이여서 선진국들에 비해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대할 수 있는데다, 빠른 도시화 진행에 따른 도심 주택 수요 증가로 건설 투자 매력이 충분한 곳"이라며 "그러나 만성적인 무역적자, 정부 재정악화, 외환부족, 10%에 가까운 높은 물가상승률 등 취약한 경제 펀더멘털에 기인한 시장 불안성도 함께 안고 있는 곳"이라고 지적했다.
신 센터장은 "수도 하노이의 경우만 하더라도 주택의 30% 가량이 1960년대 이전에 지어진 낡은 집인 데다, 전기, 상하수도, 병원, 공원 등 사회 인프라 상황 역시 낙후됐거나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주택 개량이나 도심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 공장 설비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 국내 건설업체에게는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베트남 시장 잠재성 뒤에 숨은 리스크도 진출 업체들이 사전에 충분히 검증해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한다.
신 센터장은 "베트남은 전세계 부동산값이 가장 높은 17개 국가 중 1인당 국민소득은 가장 낮을 정도로 소득에 비해 부동산이 매우 과대 평가된 곳"이라며 "이런 기형적 구조에서 분양사업을 잘못 준비할 경우에는 미분양의 피해를 덮어쓰기 십상"이라고 전했다.
그는 "특히 경제력의 80% 이상이 집중되는 호치민의 경우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해외 교포 송금 자금이나 관광 수입이 급감해 주택시장은 물론 경제 전반에 침체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며 "경기 부침의 영향을 크게 받는 개발사업보다는 현지 정부가 발주하는 관급공사나 단순 도급 공사가 상대적으로 안정적 사업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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