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두리번거리는데 갑자기 낯선 여인이 나타나는 겁니다. 제 이름을 부르길래 유심히 쳐다봤더니 엄마였어요. (엄마를) 알아보는데 30초나 걸렸다면 믿기세요?”
남편의 조국인 네덜란드에 거주하는 브라질 출신의 다큐멘터리 감독 클라우디아 리스보아(47)씨는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나러 고국 브라질에 갔다가 겪은 일을 그렇게 소개하며 웃었다. 가족들이 성형수술을 많이 했는데 엄마가 대대적으로 공사(?)를 해 언뜻 봐선 알아보기도 힘들더라는 것. 그는 “1~2년마다 브라질에 가지만 매번 낯설다”고 말했다.
리스보아씨는 성형수술에 중독된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우리 가족은 성형 중독(원제 Beauty refugee)’이라는 제목의 작품으로 제작해 제7회 EBS국제다큐영화제에 출품했다. 25일 만난 그는 “사람들은 각자 개성과 차이가 있는데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성형수술로 모두 똑같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게 슬프고 끔찍하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리스보아 감독의 가족과 삼촌 숙모 등 친척 28명이 성형수술을 받은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아직 4, 5세인 어린 조카들은 성형외과 놀이를 즐겨 한다. 옷장 서랍에서 실리콘 보형물을 꺼내 “부드럽다”며 만지작거리다 웃옷을 걷어 올려 가슴에 대기도 한다. 리스보아씨의 딸도 이를 보고 따라 한다.
사단은 의대를 마친 오빠가 1993년 성형외과 의사가 되면서부터. “엄마 아빠 여동생 할등것 없이 모두 오빠한테 눈, 코, 주름제거, 복부지방흡입술, 가슴 확대술 등 거의 모든 수술을 받았다고 보면 돼요.”결혼을 세 번한 오빠는 세 아내 모두에게 성형수술을 해줬다고 그는 전했다.
성형수술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리스보아씨는 가족들 사이에선 이방인이다. 그래서 2000년 기획한 이 작품을 통해 그는 가족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서로 소통하고 존중하려는 바람을 담았다고 말했다. 작품 속에서 그는 자신의 지나친 거부감도 일종의 상처였다는 것을 깨닫고 가족과 화해한다. 그는 “촬영에 가족들이 모두 동의하고 협조해줬다”며 “아버지와 오빠는 ‘20년이 지나도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고 말했다. 반면 “어머니는 끝까지 자신이 어떻게 나오는지에만 관심을 가졌고, 여동생도 민감하게 반응했다”며 “여동생이 국내 상영을 극구 반대해 지난해 초청받은 브라질의 한 영화제에 출품을 포기해야 했다”고 말했다.
리스보아 감독은 2000년대 들어 성형수술이 대중화하며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한국의 상황을 얘기하자 “브라질은 1960년대부터 성형수술이 시작돼 코 수술 후 밴드를 붙이고 돌아다니고, 오히려 ‘수술 잘 받아서 예뻐 보인다’는 칭찬을 받고 싶어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란 뭘까. “TV에서 보는 일반적인 기준의 미인보다는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바라보는 게 중요해요. 획일적인 미인만 있다면 아름다움의 범위가 좁아지죠.” 미에 대한 자신의 다른 관점에 빗대 그는 작품 제목을 ‘미의 난민(beauty refugee)’이라고 지었다고 했다.
그는 여섯 살인 딸이 성형수술을 하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할거냐는 물음에 한치 망설임 없이 “꼭 말릴 겁니다(I’ll discourage her)”라며 껄껄 웃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