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쳐나는 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려야만 하는 의무수입량,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제시세 급등에 따른 도입단가 상승까지. 국내 쌀 시장은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몰리고 있지만,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정책은 별로 없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타개를 위해 이젠 쌀 조기 관세화를 전향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쌀 관세화란 쌀 시장을 전면 개방하되 고율의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국내 쌀과 수입 쌀의 가격차를 최소화해, 사실상 수입을 억제하는 방식. 지금은 수입장벽을 쌓아놓는 대신, 매년 일정물량을 해마다 2만톤씩 늘려 수입하고 있다. 올해 의무수입물량은 32만7,000톤이다. 만약 우리나라가 즉각 관세화로 전환하면 금년도 기준 의무수입량(32만7,000톤)만 사오면 되지만, 내년에 가서 관세화로 전환할 경우 2만톤 많은 물량을 쭉 수입해야 한다.
한두봉 고려대 교수는 “쌀 조기 관세화를 하더라도 국내로 수입될 쌀의 양은 미미한 만큼 1년이라도 빨리 관세화로 전환해 수입량을 최소화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도 현 시세대로라면 60~70%의 관세만 매긴다면, 쌀은 지금보다 추가 수입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우리보다 앞서 관세화를 한 일본의 쌀 관세는 400% 수준이다.
정부는 진작부터 조기 관세화를 추진해 왔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농민단체가 조기 관세화 조건으로 고강도 보완책을 요구하고 있는데, 정부로선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 등 농민단체는 관세화의 전제조건으로 ▦농지 ㏊당 약 70만원씩 지급되는 고정직불금의 상향(130만원) ▦목표가격(17만83원)제를 2017년까지 5년 연장하고 ▦목표가격 대비 쌀값 보전률의 인상(85%→100%)을 요구하고 있다.
또 최근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자문기구인 농어업선진화위원회의 쌀분과위가 조기 관세화에 대한 논의를 1년 가량 벌였지만 결국 명확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활동을 종료함에 따라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관세화 전환 작업을 추진하기가 더욱 어려워진 상황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내년 쌀 관세화를 위해서는 9월말까지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9월 통보가 힘들다”고 말했다.
지금 분위기라면 연내 조기관세화는 사실상 물 건너간 상황. 이에 따라 그렇지 않아도 쌀이 남아도는데, 우리정부는 내년에 추가로 2만톤을, 그것도 오른 국제시세로 수입해야 할 처지가 됐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민단체들의 무리한 요구로 관세화가 늦춰진다면 결국 모든 농민이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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