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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영화 '골든 슬럼버'/ 긴박감 대신 따스함으로 포장된 도주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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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영화 '골든 슬럼버'/ 긴박감 대신 따스함으로 포장된 도주극

입력
2010.08.25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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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 퍼레이드를 하던 일본 총리가 무선조종헬기를 이용한 폭탄 테러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열도뿐 아니라 지구촌을 뒤흔들 대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자는 평범하면서 평범치 않은 택배기사 아오야기(사카이 마사토). 2년 전 강도로부터 여자 아이돌 스타를 구출해 국민영웅으로 떠올랐던 인물이다. 그는 사건 발생 전 총리의 차가 지나가는 곳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서 “미안하다. 넌 제2의 오스왈드(존 F. 케네디 암살범)가 될 것이다”라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그는 영문도 모른 채 도망자 신세가 된다. 그가 가는 곳마다 경찰들이 기다렸다는 듯 들이닥친다.

출발부터 영화는 음모론의 기운이 가득하다. 착한 시민영웅 아오야기는 왜 누구에 의해 어떻게 최악의 암살범이라는 누명을 쓰게 된 것일까. 진정 아오야기는 정치적 음모에 의한 희생자일까. 그리고 그는 음모의 전말을 밝히고 누명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러나 영화는 음모의 배경을 파헤치기보다 아오야기의 목숨 건 도주에 집중한다.

시작은 어둡고 음산하지만 이 영화는 기이하게도 파스텔 톤으로 스크린을 채색한다. 아오야기가 옛 애인과 후배, 직장 동료 등 여러 지인들의 무조건적 도움을 받으며 도피하는 과정은 스릴러라는 이 영화의 겉피를 의심케 할 만큼 휴먼드라마에 가깝다. 암살 현장에 아오야기를 불러 궁지에 몰아넣은 친구가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남긴 “인간의 최대 무기는 습관과 신뢰다”는 말은 139분의 상영시간을 관통한다. 심각한 상황에서 아오야기의 지인들이 항상 묻는 “아이돌 스타랑 잤냐”라는 대사 등을 통해 서스펜스보다 웃음에 방점을 찍는 전개 방식도 이 영화의 정체성에 의문부호를 던진다. 굳이 규정하자면 ‘휴먼 스릴러’라고 할까. 영화를 보는 동안 고개가 자주 갸우뚱해지지만 가슴이 뜨뜻해지는 이 영화의 미소 가득한 결말을 미워할 수는 없다.

현대사회 미디어의 진실 왜곡, 곳곳에 설치된 폐쇄회로 카메라로 구축된 21세기판 ‘빅 브러더’ 등에 비판의 일침을 놓지만 그리 예리하진 않다. 우연하게 아오야기를 돕게 되는 연쇄 살인마가 귀여운 말투로 즐겨 쓰는 말인 “놀랐지?” 수준의 비판이라고 할까.

한국의 대형 투자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가 공동제작 했으나 선 굵은 이야기도 아기자기하게 풀어내는 축소지향형의 일본영화 화법이 습관처럼 배어있는 영화다. 이시카 고타로의 동명소설을 원작 삼았다. 제목은 비틀스의 히트곡 ‘골든 슬럼버’(Golden Slumber)에서 따왔는데, 이 곡은 주인공과 지인들을 잇는 추억의 노래로 등장한다. 감독 나카무라 요시히로. 26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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