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게임이나 할까?”
MT, 술자리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 게임은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다. 특히 처음 만난 사람들 사이에 어색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데 게임 만한 게 없다. 초면인 남녀가 마주앉은 미팅 자리에서도 게임은 민숭민숭 감도는 냉기류를 해소하는 일등공신이 되기 일쑤다. 게임은 단지 시간을 때우는 소재가 아니라 서로의 정체를 탐색ㆍ파악하는 좋은 장치이기 때문이다. 한 시간쯤 ‘공공칠빵’을 하고도 성격이 탄로나지 않는 포커페이스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TV도 게임의 재미에 홀렸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듣게 되는 단골 멘트. “자, 이제 다 모였으니 게임 해야죠.” 많은 PD들은 “예능 프로그램의 성패는 캐릭터 설정에 달렸다”고 입을 모으는데, 배우 가수 개그맨 등 저마다의 이미지와 아우라를 두른 출연자들로부터 ‘캐릭터’를 뽑아내는 도구로 역시 게임 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게임은 두루뭉술한 출연자에게 확실한 캐릭터를 씌우는 도구로도 활용도가 쏠쏠하다.
SBS ‘좋은 친구들’을 연출했던 한경진 PD는 “캐릭터를 잡는 데 주로 쓰는 방법이 게임과 토크”라며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토크에 비해 의외의 변수가 많이 작용하고 능동적인 게임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게임을 통한 캐릭터 끌어내기로 주가를 올린 대표적 프로그램은 KBS ‘해피선데이-1박2일’이다. 저녁식사 재료나 잠자리 선정 등을 놓고 긴장감 속에 펼쳐지는 복불복 게임은 이 프로그램의 백미. 제로게임, 제기차기, 병뚜껑치기, 탁구, 수수께끼, 속담 맞히기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이들 게임에서 허우대에 못 미치는 게임 실력을 보여주는 이승기는 ‘허당’, 순수함이 묻어나는 우기기 대장 은지원은 ‘은초딩’이라는 캐릭터를 얻었다.
SBS ‘일요일이 좋다’가 최근 선보인 두 코너도 게임에서 해법을 찾고 있다. ‘런닝맨’은 매회 장소를 바꿔가며 펼쳐진다. 공간의 특성에 맞는 게임을 회당 서너 개 소화하며, 이광수, 개리(리쌍), 지석진 등이 캐릭터를 만들어가고 있다. ‘영웅호걸’은 서로 낯선 12명의 여자 연예인들이 매번 다른 단체나 공간을 찾아 인기를 검증하는 방식인데, 출연자들끼리 친해지는 방식으로 서로의 단점 맞히기 등의 게임을 활용하며 ‘모태다혈’서인영 등의 캐릭터 잡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요즘 예능 프로그램이 지나치게 게임에만 몰두한다는 지적도 있다. 일례로 지난 1일 방송된 ‘1박2일’은 프로그램의 대부분을 복불복 게임으로 채웠다. 게임 자체에 지나치게 몰입하면서 시골로 떠나는 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의 콘셉트는 희석되고 말았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이에 대해 “요즘 예능 프로그램의 게임을 보면 본말이 전도됐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예능 프로그램엔 게임이 주는 자극적인 재미와 별개로 스토리 구성이 있어야 하는데, 스토리는 묻혀버리고 게임만 앙상하게 남았다는 지적이다. 정씨는 “게임과 스토리가 조화를 이뤄 캐릭터가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게임 내에서 자연스럽지 못하게 캐릭터가 만들어져 프로그램의 본래 취지가 묻혀 버렸다”고 비판했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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