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막을 내린 KBS ‘구미호 여우누이뎐’(이하 ‘구미호’)의 윤두수(장현성)는 죄인이다. 딸 초옥(서신애)을 살리려고 구미호인 구산댁(한은정)의 딸 연이(김유정)를 죽였고, 죄를 들킬까 봐 아내(김정난)도 죽인다. 그 때마다 그는 변명한다. “나는 잘못이 없다.” 딸을 위해, 또는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그러나 초옥을 살리려고 구산댁 모녀를 집에 들이고, 구산댁을 첩으로 삼아 집안에 분란을 일으키고, 연이를 죽인 건 모두 윤두수다. 결국 그는 자신이 살기 위해 가산을 조현감에게 모두 넘기며 스스로 집안을 몰락시킨다. 윤두수는 자식 때문에, 가족 때문에 죄를 지었다고 하지만 위기 때마다 가족을 하나씩 버린다. 그가 “딸처럼 아낀다”던 연이를 친딸을 위해 죽인 건 필연적이다. 그는 평소엔 외부인에게도 온화한 표정을 짓지만, 위기가 닥치면 곧바로 상대를 희생양으로 삼는다.
‘구미호’에서 사람들에게 괴수 취급 받는 구미호는 공동체의 소수자, 또는 약자에 대한 은유다. 그들은 다수의 사람과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 받고, 공동체가 위기에 빠지면 가장 먼저 배제된다. 윤두수가 연이에 이어 자신의 종을, 아내를 죽인 뒤 결국 혼자 남게 되는 것은, 사회에서 소수자를 몰아내면 그 다음으로 약한 계층이 또다시 소수자가 된다는 현실을 섬뜩하게 빗댄다. 그리고 구미호가 윤두수 일가에게 복수한 것처럼, 공동체에서 배제된 소수자는 공동체를 향해 언젠가 분노를 폭발시킨다.
‘구미호’에서 구미호와 인간의 화해의 가능성이 열리는 건 구산댁이 부모를 잃고 홀로 된 초옥을 키울 때다. 구산댁에게 한때 연이의 영혼이 빙의됐던 초옥은 이미 딸이나 다름 없었다. 그는 외롭게 홀로 살기보다 초옥과 함께 하는 것을 택한다. 우리에게 공동체가 필요한 건 함께 살기 위한 것이지 나와 내 자식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말하려 한 듯 하다.
사극인 ‘구미호’는 사람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다뤄져온 구미호를 구미호의 입장에서 바라보면서 현대사회의 문제를 지적한다. ‘구미호’를 통해 전래의 구미호 이야기가 다시 현대와 호흡할 수 있는 힘을 얻은 것이다. 그래서, “내 자식 때문에 남의 자식 죽일 것이냐”는 구산댁의 외침은 종영 뒤에도 여운을 남긴다. 내 자식 때문에 남의 자식을, 내 편을 위해 남의 편을 희생시키면 공동체는 무너진다. 우리는 지금 그렇지 않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내 자식을 위해서라면 남의 자식도 죽일 수 있는 부정이나 모정이 아니라, 모든 인간을 내 자식처럼 생각할 수 있는 진짜 인정(人情)이다.
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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