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미국 대통령의 평양 방문 중 북한 최고 권력이 북한을 비우는 상황이 연출됐다.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의 방북 이튿날인 26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전격 방중한 것이다. 이는 확실시됐던 '카터_김정일 면담' 불발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이날 북한 매체들은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 행보를 일절 보도하지 않았다. 전날 평양 도착이나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만찬 소식을 신속히 내놓은 것과 대조적이다.
일단 북한 매체와 정부 소식통의 전언을 종합하면 카터 전 대통령은 25일 오후 4시30분 평양 도착 후 김 상임위원장과 환담ㆍ만찬을 했고 김 위원장은 26일 0시대에 월경했다. 따라서 두 사람의 회동이 이뤄졌다면 김 위원장이 방중길에 오르기 전 25일 늦은 저녁 정도가 가능 시점이다. 일각에선 지난해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방북 당시 재미를 못 본 북한이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카터 전 대통령을 '낙점' 해놓고 면담을 회피하진 않았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카터 전 대통령의 나이(86세)와 김 위원장의 이동 거리를 고려할 때 물리적으로 면담이 힘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북한 의전 관례상 김 위원장의 면담에 앞서 명목상 국가원수인 김 상임위원장이 먼저 나온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번 방북을 중재한 박한식 조지아대 석좌교수가 "김 위원장과의 대화를 북한에 (조건으로) 내걸었다"는 발언과는 다른 상황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한편 카터 전 대통령은 당초 26일 귀국 일정을 27일로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과의 회동이 불발돼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체류 일정을 하루 연기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카터 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회동이 이뤄질 때까지 일정을 연기할 가능성도 있다.
장재용 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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