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주박물관 정문을 들어서면 시멘트로 만든 종각에 높이 3.75m에 달하는 육중한 종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 종이 바로 현존하는 고대 동종 가운데 가장 큰 종으로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성덕대왕신종이며 속칭 ‘에밀레종’으로 국보 제28호이다.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성덕대왕신종이라면 잘 몰라도 시주할 돈이 없어 아기를 시주해 종을 치면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기의 울음소리처럼 ‘에밀레’ 소리가 들린다는 전설로 전해오는 에밀레종을 더 많이 알고 있다.
에 이 종이 만들어진 연유가 기록되어 있다. 즉 신라 제 35대 경덕왕이 황동 12만근을 마련하여 아버지인 성덕왕을 위해 대종을 만들다 이루지 못하고 돌아갔다. 아들 혜공왕이 서기 770년 12월에 제작 완성하여 봉덕사에 안치하고 종의 이름을 성덕대왕 신종이라 했다. 봉덕사(奉德寺)는 성덕왕의 명복을 위해 아들 효성왕(孝成王)이 738년에 세운 절이기 때문에 이곳에 안치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종은 만들어 진 연유를 뚜렷하게 알려주고 있다.
이 에밀레종은 최초 봉덕사에 있어 한 때는 봉덕사종이라고도 했지만 언젠가 봉덕사는 없어졌다. 봉덕사는 지금까지도 그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 다만 경주의 북쪽을 가로 흐르는 북천(北川) 근처에 있었다가 언젠가 북천이 호우로 범람하면서 없어지고 이 종만 남아 영묘사(靈廟寺)로 옮겨졌다. 조선시대 들어와 경주읍성의 남쪽 문루에 걸려 있었다고 하나 확인할 수 없고, 일제 강점기 때는 경주읍성 남문 밖 지금의 봉황대(鳳凰臺) 서편 기슭의 종각에 있었다. 일제가 1910년 조선을 강제로 침탈하고 병합조처를 한 후 1915년 이 종을 경주부(현 경주시) 관아로 옮겼다. 현재 경주시 동부동에 있는 경주문화원 건물이 바로 그 건물이다. 1926년 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이 개관되면서 경주부 관아 건물이 박물관 건물이 되었다.
광복 후 경주분관은 국립경주박물관으로 거듭나게 되었고 1970년대 경주고도관광개발 10개년 계획이 청와대에서 마련되면서 그 일환으로 지금의 국립경주박물관이 1976년 경주 인왕동에 새롭게 개관되었다. 개관에 앞서 1975년 이 종을 위해 박물관 경내에 마련한 콘크리트 종각에 옮겨 보존해 오면서 해마다 제야(除夜)에 경주시민을 위한 타종식이 열린다.
1993년 부임한 지건길 관장이 불규칙적인 타종행사와 특히 제야에 타종하는 것은 종의 금속피로가 가중되기 때문에 타종을 중지하고 녹음으로 대체했다. 그리고 1996년 종에 대한 대대적인 종합조사를 실시했다. 이 때 전자저울 전문회사인 주식회사 CAS에서 특수 계량기 CASTON Ⅲ를 을 제작해 무게를 측정한 결과 18.9톤 이었다. 그리고 감마선 촬영 등을 통해 1200여 년을 견디어 온 에밀레종에 대한 몸 상태를 정밀 조사했다. 결과적으로 크게 우려할 상태는 아니었지만 종의 영구보존을 위해 제야의 타종은 중지했다.
종은 두드려 지속적으로 소리를 내줘야 제 구실을 하기 때문에 종을 치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나 한번 탈이 나면 다시는 회복이 불가능한 문화유산이기 때문에 보호·보존 차원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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