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한반도 상황은 이른 봄부터 심상치 않게 전개됐다. 3월 15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북핵시설 사찰단을 철수시키자 북한은 5월 4일 영변의 5MW원자로 가동 중단과 폐연료봉 추출로 대응했다. 핵무기 제조용 플루토늄 재처리에 돌입한 것이다. 미국 조야에서는 군사적 해결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영변 핵시설에 대한 외과적 폭격 시나리오까지 검토됐다. 주한 미국인들의 본국 소개 계획도 마련됐다. 6ㆍ25 이후 전쟁에 가장 가깝게 다가간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북한도 지지 않고 6월 13일 IAEA탈퇴를 강행했다.
■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은 이처럼 1차 북핵위기가 정점으로 치닫고 있는 때에 이뤄졌다. 그는 북한이 IAEA를 탈퇴하던 날 오후에 서울에 도착했고, 이틀 후 판문점을 통과해 평양으로 향했다. 클린턴 정부는 그의 방북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대북 제재에 차질을 가져온다고 본 탓이다. 하지만 카터 전 대통령은 김일성과 두 차례 회담을 갖고 핵 시설 동결과 남북정상회담 개최 등에 합의했다. 그로부터 20일 후 김일성이 사망해 남북정상회담은 불발했지만 핵시설 동결 합의는 제네바 협정으로 이어져 1차 북핵위기를 종결시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 카터 전 대통령이 오늘 미 정부의 고위급 특사자격으로 또 다시 평양을 방문한다. 북한에 억류돼 있는 미국인 아이잘론 말리 곰즈씨를 데려오기 위해서다. 미 행정부는 그의 방북이 대북 정책 현안과는 무관하며 사적이고 순수한 인도주의적 임무에 국한된다고 거듭 강조한다. 지난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북한에 억류된 미국 여기자 2명의 석방을 위해 방북했을 때도 미 정부는 비슷한 입장을 취했다. 북한측에 다른 메시지를 주지 않기 위해 행정부 인사를 포함시키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 그러나 중국이 6자회담 재개 등 한반도의 긴장국면 전환을 위한 노력을 가시화하고 있는 것과 맞물려 그의 방북이 플러스 알파로 이어질지 관심이 적지 않다. 김정일 위원장과의 면담이 이뤄지면 핵 문제 등 다른 현안들도 언급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이 추가 금융제재를 흔들림 없이 추진하고 있어 갑작스러운 국면 변화는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다만 대북압박을 계속하면서도 인도주의적 사안을 외면하지 않는 미국 정부의 자세가 돋보인다. 신의주 지역이 큰 수해를 입어 식량과 생필품 지원 등 긴급구호가 필요한 상황인데도 주저만 하고 있는 우리 정부와는 확실히 다르지 않은가.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