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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Ⅱ] <2> 유럽·아시아의 접점, 터키 매료시킨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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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Ⅱ] <2> 유럽·아시아의 접점, 터키 매료시킨 한국

입력
2010.08.24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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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제 나라의 제품… 대통령 딸도 애용합니다"

지난달 28일 터키의 최대 도시인 이스탄불 구시가지에 있는 한 식당. 성소피아 성당, 블루 모스크 등 역사적 유적들에 인접해 있어 늘 전 세계 관광객들로 붐비는 이 곳에서도 ‘메이드 인 코리아’의 열풍은 확연히 느껴진다.

이스탄불 축구팀 베식타스의 경기를 중계하던 벽면의 대형 TV엔 LG로고가 선명했고, 한 켠에 자리한 에어컨은 LG전자의 현지 합작법인인 LG-BEKO 제품이었다.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식당 주인 데랴씨는 “전자제품뿐 아니라 내 차도 현대 엘란트라(아반떼의 현지판매명)”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는 “‘형제의 나라’로 불리는 한국의 제품은 이미지도 좋고, 품질도 뛰어나 대통령 딸부터 일반인들까지 폭넓은 사랑을 받고있다”고 전했다.

동서양 문명의 교차점이자, 글로벌 기업들의 경연장이기도 한 터키에서 한국 기업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현대차가 지난해 내수시장 1위에 오르며 터키 자동차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고, LG전자는 현지 합작사를 통해 지난해 에어컨 시장의 55%를 점유, 사실상 시장을 평정했다. TV부문에서도 LG전자와 삼성전자는 현지 토종업체와 네덜란드의 필립스, 일본의 소니를 누르고 판매 1, 2위를 다투고 있다. 최근에는 원전건설과 방위산업 부분까지 우리 기업이 진출하고 있다.

우리 기업의 터키진출은 주로 합작 형태를 통해 이뤄졌다. ‘인적 네트워크(관계)’를 중시하는 터키의 정치, 경제적 특성 때문이다.

현대차의 경우 현지 대기업인 키바르사와 합작, 1997년에 이스탄불에서 120㎞떨어져 있는 이즈미트시(市)에 공장을 건설했다. 지난달 29일 찾은‘현대아싼오토모티브’공장 직원들은 지난해 내수 1위(시장 점유율 16.4%)에 올랐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현지 자동차 업계도 현대차의 1위 달성을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11년간 1위를 지켜왔던 프랑스의 르노(지난해 시장 점유율 16%)를 2위로 밀어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장 곳곳에는 르노차와 이 곳 현대차 공장에서 생산하는 차를 시트,문, 범퍼 등 부분별로 전시해 놓고 있었다. 안전도와 성능 면에서 현대차가 앞서고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안내를 맡은 나일선 현대차 터키공장 과장은 성공 비결로 꾸준히 소형차 품질을 향상시킨 결과를 꼽았다. 그는 “현대차에는 사이드 빔이 들어가 있지만 르노 제품에는 이런 안전장치가 없다”며 “이같은 품질 덕분에 지난해 1위를 차지했다”고 설명했다. 근로자 콜류치씨는 “압둘라 귤 대통령의 딸도 현대차 겟츠(클릭의 현지 판매명)을 타고 다닐 정도로 우리의 브랜드 인지도는 최상급”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올들어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소형차에 이어 최근 쏘나타, 제네시스 등 고가 차량을 이스탄불 시내 중심가에 전시하고 있다. 수익성이 높은 중ㆍ대형차 부분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LG전자의 합작사인 LG아르첼릭도 에어컨의 대명사로 불린다. 1999년 연산 160만대 규모로 설립한 이 합작사는 2004년 이후 터키 에어컨 시장점유율 50% 이상을 놓친 적이 없다. 자신감을 얻은 LG전자는 최근 별도의 판매법인을 설립하고 TV와 휴대전화를 공략, TV는 올들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위 경쟁사는 삼성전자. 한국기업끼리 터키 TV시장을 쥐락펴락 하고 있는 셈이다.

임진환 LG전자 부장은 “터키는 동서양 문명의 교차로답게 필립스, 소니 등 전세계 업체들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시장”이라며 “매일 경쟁사의 판매조건과 판촉활동을 조사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우리 기업의 진출은 최근 들어 합작사가 아닌 단독 진출 방식으로 이뤄지고, 사업영역도원전 및 방산, 건설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최근 1~4년 사이에 터키에 들어온 CJ제일제당, KCC, 대양금속, 현대로템, 효성 등은 모두 단독으로 진출했다. 이는 그동안 쌓인 양국 간 신뢰 덕분이다. 특히 방산제품 수출이 대표적이다. 현대로템은 한국형 전차 K-2를 4억달러 규모로 터키에 기술이전 방식으로 수출하고 있다. 여기에다 최근에는 터키 정부가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추진 중인 고속철 사업에도 뛰어 들었다.

SK건설은 동서양을 가르는 보스포로스 해협을 잇는 10억달러 규모의 공사를 수주, 건설을 추진 중에 있다.

물론 성공사례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08년 야심차게 현지에 공장을 세워 진출했던 KT&G는 터키 정부의 금연정책 강화와 기존 업체들의 텃세로 쓴맛을 봤다. 이 회사는 최근 터키 공장에서 생산한 담배를 인근 러시아 등 독립국가연합(CIS)지역으로 수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한편, 터키시장은 한_유럽 FTA(자유무역협정) 발효 여하에 따라 다시 한번 변화를 맞을 전망이다. 터키가 아직 유럽연합(EU)에 가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병제 코트라 이스탄불 KBC 센터장은 “최근 터키 정부가 다시 EU 가입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지만 결과는 불투명하다”며 “터키의 EU가입이 계속 거부될 경?FTA로 인한 관세철폐 혜택을 못받아 우리 기업의 터키시장 전략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태희기자 bigsmile@hk.co.kr

■ 아이난 터키지역개발투자청장 "교육·R&D 분야로 교류 확대 희망"

터키 정부는 최근 들어 외국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에르카 아이난(사진)씨는 이를 뒷받침하는 터키지역개발투자청의 총책임자다. 투자를 희망하는 외국기업에게 경제 산업 정보와 이에 따른 인센티브를 안내해 준다. 또 터키의 지방자치단체와 외국기업을 연결시켜 주는 역할도 한다.

한국 기자를 보자 대뜸 그는 “나는 우리(터키) 조상이 한국과 이웃이라고 믿고 있다”며 “한국전쟁에 터키가 참전한 것은 형제의 나라라는 뜻이 아니냐”고 친밀감을 표시했다. 이 곳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국기업의 터키 진출은 1990년대 들어 활발해졌다. 92년 카스(주)가 이스탄불에 판매법인을 설립한 것이 우리기업 진출 1호다. 97년 현지공장을 건설한 현대차의 경우는 최초의 대규모 투자(약 1억달러)이자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힌다. 2000년 LG전자의 합작사 설립 이후 한동한 주춤했던 우리기업의 터키 진출은 2004년 이후 다시 활발해졌다. CJ가 부르사 지역에 사료공장을 건설했고, KCC도 이즈미트 지역에 도료 공장을 지었다. 최근에는 효성과 대양 금속 등이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아이난 청장은 “양국의 경제 관계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단순히 생산공장을 터키에 짓는 것 외에 교육과 연구개발 분야 교류가 더욱 활발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터키 정부는 한국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지난 6월에 압둘라 귤 터키 대통령이 방한, 30년만에 한-터키 정상회담을 열기도 했다.

아이난 청장은 “유럽과 아시아, 러시아를 잇는 터키의 전략적 위치는 한국 기업에게 엄청난 매력일 것”이라며 “터키 입장에서는 앞으로 자동차 생산, 제철과 건설 분야에서 한국기업의 투자를 유치해 앞선 한국의 기술을 배우는 게 희망사항”이라고 말했다.

송태희기자 bigsmile@hk.co.kr

■ 수박 부피도 재는 현지화한 저울로 시장 진입에 성공

터키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 또 있다. 바로 저울 제조회사인 카스(주). 지난 1992년 터키에 진출한 한국기업 1호다. 카스는 현재 터키 저울 내수시장의 14%정도를 차지하며 시장 점유율 2~3위권을 지키고 있다. 가격 경쟁력이 있는 터키 현지 기업과 고부가가치 시장을 선점한 독일계 기업 사이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카스의 성공 요인은 한마디로 현지화 전략. 각종 과일에서 견과류 등 농산물이 풍부하게 생산되는 터키시장에 맞게 저울을 생산한 덕택이다. 가령 수박의 경우, 터키인들은 무게뿐 아니라 크기에 따라 값을 다르게 정한다. 이를 간파한 카스는 무게를 측정하는 저울에다 부피도 가늠할 수 있는 저울을 시장에 내놓았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터키 재래시장 어디서든 카스의 저울을 볼 수 있다.

카스는 최근에는 터키의 대형마트 시장에 파고들고 있다. 터키의 유통시장이 재래시장 위주에서 현대적 대형마트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무게를 재면 동시에 가격이 인쇄되는 저울을 시장에 내놓고 독일계 저울업체와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이 회사는 산업용 저울 시장에도 진출했다. 수십 톤이나 나가는 컨테이너를 잴 수 있는 저울도 항만 업체를 대상으로 판촉 중이다.

안창균 카스저울 터키 법인장은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정보력이 부족하지만 코트라 등 유관기관을 잘 활용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며 “치밀한 시장조사를 통해 터키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한다면 기술력을 갖춘 국내 중소기업은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송태희기자 bigsmil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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