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도 슬피 울고 산하도 찡그리니/ 무궁화 세상은 이미 망해 버렸다네/ 가을 등불 아래서 책 덮고 회고해보니/ 인간 세상 식자 노릇 참으로 어렵구나’(황현의 ‘절명시’)
‘가슴 속의 피 다하니/ 이 마음 다시 허하고 밝아지네/ 내일이면 깃털이 돋아나/ 옥경에 올라가 소요하리라’(이만도의 ‘구월 초이?날 밤에 읊다’)
1910년 한일 강제병합 직후 자결한 순국지사 매천 황현(1855~1910)과 향산 이만도(1842~1910)의 한문 문집 과 이 처음으로 번역됐다. 한국고전번역원(원장 박석무)은 24일 4권 중 3권, 7권 가운데 1권을 번역출간했다고 밝혔다.
매천이 기록한 한말 비사인 과 그의 시는 알려져 있었으나 문집 전체가 번역되는 것은 처음이다. 은 매천의 순국 이듬해인 1911년 일제의 검열을 피해 중국에서 간행됐다. 매천의 절친한 벗으로 을사조약 이후 중국에 머물던 창강 김택영이 편집하고, 매천의 친구와 후배, 제자들의 모금으로 나올 수 있었는데 김택영은 에 대해 “그의 문장이 하늘을 움직였다”고 말했다.
김택영, 이건창과 함께 조선 후기의 3대 시인으로 꼽힐 정도로 시재가 뛰어났던 매천은 농촌의 일상을 다룬 시와 시대를 고민하는 우국시를 주로 썼다. 잘 알려진 절명시 4수뿐 아니라 명성황후 시해를 탄식한 ‘눈물을 닦다’, 을사조약 이후 순국한 민영환 홍만식 등의 충절을 기린 ‘오애시’ 등을 남겼다.
향산은 퇴계 이황의 후손으로 정삼품 관직인 통정대부까지 지냈으나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예안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인물. 경술국치 후 24일 동안 단식하다 순국했다. 그는 단식하는 동안 심경을 적은 ‘청구일기’를 남겼는데, 에 실려있다.
한국고전번역원은 과 의 번역을 기념해 10월 29일 이화여대에서 기념학술대회도 열 예정이다. 박석무 원장은 “순국지사들에게 포상을 통해 보훈을 했다고 하지만 그들의 삶의 궤적이나 사상의 깊이를 살피는 데는 소흘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이들의 문집을 발간함으로써 우리의 선비정신, 애국심을 알리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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