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비롯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한국 국채 ‘사자’ 행진으로 채권금리가 계속 떨어지자, 한국은행이 ‘그린스펀의 수수께끼(Greenspan’s Conundrum)’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린스펀의 수수께끼’란 중앙은행이 아무리 기준금리를 올려도 시장금리(장기금리)가 오르지 않는 역설적 상황을 일컫는다. 2005년 2월 앨런 그린스펀 당시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세계 채권시장에서 지금 예기치 못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는 수수께끼(conundrum)와 같다”고 말한 데서 비롯된 표현이다. Fed는 2004년 6월부터 2006년 3월까지 15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연 1.0%에서 연 4.75%로 올렸으나,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은 연 4.62%에서 연 4.85%로 겨우 0.23%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이 같은 역설적 상황이 발생한 것은 중국과 일본 등 무역흑자국이 넘치는 달러로 미 국채를 대거 사들였기 때문. 미국 내에선 돈줄을 조이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렸지만 해외에서 돈이 쏟아져 들어와 국채를 마구 사들였고 이로 인해 채권값이 급등(금리 급락), 결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무력해진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현상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달 초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린 후에도 국채 금리는 계속 하락한 데다, 지난주부터는 중국의 한국 국채 매수 확대 소식이 나오면서 금리가 더 급락했기 때문. 24일에도 외국인 매수세의 영향으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0.04%포인트 급락, 3.60%대까지 무너졌다.
한은도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다만 한은의 한 고위관계자는 “미국과 한국 국채의 위상이 완전히 다른데 중국이 과거 미국 국채처럼 한국 국채를 장기간 대량으로 매수할 것으로 확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일구 대우증권 채권분석부장은 “이미 해외에서 들어오는 유동성으로 인해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의 독립성’은 사실상 깨졌다고 볼 수 있다”며 “우리나라 금융시장도 국내 통화정책보다 외국 유동성이 좌우하고 있는데 한은이 이를 통화정책에서 매우 큰 변수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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